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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소심하기도 한 독특한 소녀.
얼마전에 길을 지나가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그 소녀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물론 그녀는 인류학적으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지만,)
저의 뜬금없는 구애를 언제나 아름다운 팬심(Fan心) 정도로 포장해 주는 그녀는
그 날도 순수하게 저와의 만남을 기꺼워해 줬는데,
또한 아주 시원하게 웃으며
얼마전에 시험이 끝났다며, 그 뒤로 책을 읽고 싶었는데, 마침 저를 만나서 잘됐다며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더군요,
시내의 책방에서 잠시 생각하다가 오래되고 낡은 책을 한권 추천해 주었는데, 그 뒤로, 오늘까지
그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책은 2005년도에 꼽은 올해의 책이었고, 소장의 가치가 정말 충분한 책이었지만,
그것은 벌써 5년 전의 이야기 였으니까요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6년전의 이야기가 되겠죠,)
당연히 신선한 책을 추천해야 했을 것이고, 가벼우면서도 인생의 어느순간에의 철학이 우러나오는 책,
그리고 제 산뜻한 마음을 미묘하게 표현할수 있으면서 부담은 주지 않을 만한 책을 추천해줘야 했겠죠.
저는 그렇게 마구 마구 후회했습니다. 머리털을 쥐 뜯어가면서,,,
하지만.....
2005년도 이후에 그런 책이 발간되었던가요?
도저히, 꼽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찾게 되었다.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책, 바로 이 책입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라는 박민규씨의 책!
박민규씨라면
5년 전 참신한 장편 2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 지구영웅전설,) 과 단편집 1권(카스테라) 으로 대중을 사로잡아 버린 신상작가였지만,
뜬금없이 '핑퐁'이라는 배설물에 가까운 소설을 출산하며, 기대를 저버리게 하고는
장편은 이제 자신과 맞지않다는 것을 깨달은듯이 각종 단편으로, 단편상을 휩쓴 작가가 아니던가요?
상당히 쉽게 편파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저로서는, '핑퐁'에서 느낀 구리구리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전작이 선보인 참신함과 가능성 혹은 완성도 따위는, '순간의 빛나는 재능들'로 규정해 버리고
'이제 그의 소설은 읽지 않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해 버리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2009년 이 소설이 발간 된 이후 여러매체에서 대단한 소설이라는 리뷰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거기에 솔깃하여 제 선언을 주워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깨끗히 승복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아..........사랑이구나.'
이 소설의 '장점' 혹은 '세일링 포인트'. 뭐 그런 것을 말로 딱 잡아내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형식에의 치중은 전작들에 비해 진일보(아니 진삼보?) 했지만, 힙합에 들어간 화음과 같이,
여전히 완벽하게 구성의 미학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니까요.
허무맹랑한 넋두리와 괘변을 튀지않고 글의 흐름에 섞어 냈지만, 작가가 잠시 방심한다고 느껴질때마다
아무지게 다문 손아귀에서 삐져나오는 밀가루 같이 과잉된 개성들이 마구 빠져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넘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넘치는 않는 선에서 가득 담아내고요,
촌스러운 배경을 촌스러운면서도, 또한 아름답게 잡아내고요,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이,)
일상스럽지 않은 추녀 미남의 사랑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만들고요,
구질구질 변명같은 걸 늘어놓지 않고도, 사랑에 관한 사유를 가능케 합니다.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의
중요한 순간을 예측할수 없는 방식으로 잡아 내, 독자 자신이 마치
진짜 사랑의 감정에 한발 다가간듯 느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연애란 무엇인지, 혹, 그것이 미추에의 집착인지 아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래서,,,
'사랑.... 한번 해볼까?'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칙릿계이야기나 순문학 혹은 환타지, 야설(?)에서 사랑이야기를 항상 접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학에서의 사랑이야기 말이죠,)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사랑에 대한 상황이 아닌, 그 본질에 대해 접근하는 순간, 촌스럽게 변질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랑' 그 자체보다는 스킨쉽이나, 섹스, naked 같은 원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것에의 과잉을 동반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결국 '사랑'이라는, 그 감정만을 이야기 하다보면 촌스럽고 좀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섹스의 원초적이면서 본질적인 '날선 세련됨'은 그런 촌스러움을 희석시켜 주는것이 아닐까요? (최소한 제게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박민규씨는 섹스도 살인도 없는, 어찌보면 순진하기만 한 사랑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사랑 본연의 것을 사유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이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게 권할수 있는 도서'라는 강력한 신무기를 장착했습니다.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소심하기도 한 독특한 소녀.
저는 다음 생(生)에, 그녀에게 이 책을 추천할 예정입니다. (그녀에게는 이미 훈남 남자친구가 있으며 결혼예정이니까요,,,)
그러니, 누군가 제 글을 보고 있을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네요 (당신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소녀라면 금상 첨화 겠지요.,,,)
이건 진심입니다.
이 책은 2010년 크리스마스 특집입니다!
탕아가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완전히 성공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