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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42
알렉스 헤일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최근 몇주간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모든것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장르의 소설을 연달아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서 접하게 된 작품들이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공교로울 정도로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로,
심지어 모두가 뛰어난 수작들이더군요, 때문인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씌여지는 소설에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네요.
이 책을 접한건 역자인 '안정효'씨 때문입니다.
대지, 백년동안의 고독, 야망의 계절, 가아프가 본 세상에 이르기까지 몇권의 역작이 모두 뛰어난 번역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추었던 터라,
가치있는 책을 고르는 확실한 방법중의 하나가 존재감 있는 번역가의 책을 고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인터넷 서점에서 안정효라는 이름을 검색해서 나온 책들을 모두 사들였습니다.
이 소설은 그 중에 한권입니다.
제 결정이 탁월했음을 이 책은 증명하는데,
첫 번째권에서의 아프리카적인 여유로운 삶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표현들은
마치 뛰어난 다큐멘터리를 소설로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미국의 삶이후로, 미국의 역사와 함께하는 그들의 가족사를 접하면서는 그들이 느끼는 고독과 서서히 확립되는 연대감, 그리고 따뜻함
모든것들이 서서히 고조되어 책의 마지막에 이를때쯤이면 저 자신이 마치 그들이 가족이 된 듯한 느낌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서로 다른 감정들의 명확한 존재감이며 그것들을 모두 이해 시키는 작가의 말주변입니다.
아프리카의 삶밖에는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고 고집불통인 '킨테'의 시선이, 삶이라는 여정속에서 점점 둥글게 변해가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에서 기독교적 삶을 살아가는 마틸다의 삶,
딸이 혼혈 애인을 데리고 오자, 검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며 넘어가는 '톰'의 흑인적인 가치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가치관을 긴 시간을 통해 서서히 독자들에게 납득시킵니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시선이지만 누가 옳거나 틀리다는 가치관의 판단 없이 자유롭게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모습,
이것은 진실이 아닐까요?
이 소설은 최근에 읽었던 몇몇 한국 소설( <= 소설을 국가 단위로 몰아가는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 지는 않지만,) 에서 보였던,
자신의 도덧적 잣대로 다른 이의 시선을 뭉개버리는 글과 상당히 대비가 되더군요.
예를 들면요, 우리나라의 유명한 ㄱ작가는요, 사형제도가 바탕으로 깔리는 소설을 만들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편은 아름답고 절박하게, 찬성하는 편에는 늙고 추악한 이미지를 심어주며,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이것은 공편하며, 진실인가요?
현재에 흑인노예제도에 동조하는 이가 0.001% 정도쯤 존재할까요? 하지만 이 소설속에서는
지금으로 보기에는 다소 불합리한 노예제도라는 문제를 서술하면서, 작가의 주관적인 개입을 최소화 하면서,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동조한 이유를 그들이 단순히 바보이며, 멍청해서 라기보다는
당대에 있을 법한 가치관 하의 여러 시선을 다룸으로서 독자 나름의 가치 판단의 자세를 가지게 만들며,
이를 통해,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접할때마다, 노예들과 인간적인 관계에서 주,종 관계를 요구하는
백인 주인들의 삶조차도, 사실은 가여워 보이게 만들고 맙니다.
누구 한사람이 일방적으로 불쌍하거나 부당하다기 보다는, 모든 캐릭터가 공평하게 소설속에 녹아드는 것을 느끼며,
당대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극적 감상이 들게 되는 거죠.
이런 감정들은 차곡차곡 쌓여, 결국 이 소설이 문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진정 뛰어나다는 데 찬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글의 후반에 자신이 어떻게 뿌리 찾기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서술이 등장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는 얻을수 있었던, 상세한 표현들과 고증의 방법들은
작가가 이 작품에 쏟아 부은 열정이 '뿌리 찾기'라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케 했습니다.
마치 직접 보고, 그림으로 그린듯이 생생하게 표현된 아프리카의 삶은 우리의 그것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안정효씨가 직접 밝히듯이 뒤로 갈수록 흐름이 성겨지며, 점점이 흩어지는 드라마의 크기와 밀도는
이 작품의 아주 사소한 단점이었습니다.
다른 방면으로 아쉬운 점은 이 책은 참 좋은 소설이지만, 이것저것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이들에게 추천하기가 머뜩잖은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책은 안정효씨가 번역한 작품이 갖고 있는 특징들,
'길고 빡빡한 문장과 서술, 방대한 페이지 수를 가지고 있다' 라는 특징들에 유효한 작품이며,
완독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깊은 호흡과 장대한 서사 감동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에만 중점을 두는 최근의 추세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으니,
책만 읽으면 하품이 난다거나, 호흡이 긴 책을 좀처럼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 강렬한 이미지에 강점을 보이는 온갖 추리소설들만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할거라고 생각합니다.
P.S 안정효씨의 번역은 아주 뛰어납니다.
문법에 어색한 흑인들의 말투를 우리나라 말로 이처럼 효율적으로 나타낼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그밖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주류에 편입할수록 점점 정확하게 바뀌는 흑인들의 말투의 변화는 정말 자연스럽고, 사실적입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짧게 나열하는 다른 작품의 후기와 달리,
개역판을 맞이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흑인 문학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생각들을 곁들였으므로, 소장가치가 엄청납니다.
최근에 페이퍼 북으로 출시되었는데,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 할인까지 받는다면 겨우 4000원 남짓에 살수있습니다.
단언컨데~ 이 책은 4000원이
줄 수있는 가장 커다란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이 10000원 제값을 주고 산 사람이라고 해도 해당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