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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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입니다. 일본에서는 2001년도에 발간된 책이니 20년 정도 지난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내에서도 2003년 7월에는 <짝사랑>으로, 2006년 5월에는 <아내를 사랑한 여자>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외사랑>으로 3번째 발간이 되겠네요. 같은 소설이 이름을 세 차례 바꾸어서 재 발매된 걸 본 적은 처음이네요. 한국 독자들의 히가시노 게이고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은 출판사의 상술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 가지 버전의 표지 중에 저는 <짝사랑>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이 소설은 2017년 WOWOW 라는 일본의 채널을 통해 6부작 드라마화가 되었는데요. '드라마화 결정은 쉬운 일이었겠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만큼 이 소설은 대화체만 발췌 독해도 감 잡을 수 있는 이야기의 진행, 가치 중립적인 주인공을 통한 정의 실현, 자극적인 소재 선점 같은 영상화에 유리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1985년 소설 <방과 후>로 데뷔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이 발간될 즈음, <백야행>(1999년), 가가 형사 시리즈 <거짓말, 딱 한 개만 더>(2000년), 갈릴레오 시리즈 <예지몽> (2000년) 등으로 상업 소설의 주류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추리소설 작가로 나름 인정받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부터는 사회파 추리소설가로 돋움 하게 되었고, 이후 민감한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가진 소설을 연속해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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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정신적 성별과 생물학적 성별이 서로 다름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얽히고설키어 형성한 사건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 정체성'이라는 이슈를 다루게 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고, 기피하고, 어두운 것으로 여기는 화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건 이 소설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이슈를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기보다는 극중 인물의 발언을 통해서 이곳저곳에 심어 놓더군요. '노련함'보다는 '열심히 하는' 느낌이었는데요. 지금까지 발표된 전설의 사회파 소설을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세련되다기보다는, 둔탁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들은 일상에서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세련되게 전달하는 편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단점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대부분과 비슷합니다. 일상에서 시작된 가벼운 변화가, 살인 사건의 배경으로 이르는 면에서 주요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예를 들면, 대학 동창들에게 살인을 고백한 미쓰키에게, 자수를 권유하기보다는 너도나도 숨겨주려고 한다든지). 총 890페이지로 책의 볼륨은 두툼한데 반해, 소설의 중반까지는 흐름에 변화가 적고, 지나치게 대화체만으로 구성되는 진행을 유지하는지라, 유행이 지난 고전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소소하게 부족한 측면들이 한 개 두 개 쌓이면서, 폭포수 같은 감동, 머리카락이 삐쭉 설 정도의 독창성을 구사한다기 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공장장의 장르소설로 회자되기에 적당해 보였습니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통해 성 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고, 또 심도 있는 지적을 하는데요.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군요. 사건의 흐름과 소설적 재미를 초월해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결과 또한 (살인사건의 내막으로 밝혀지는 이는 시신 훼손으로 인해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처리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을 통해 줄 곳 나타내고자 했던 메시지와 한계점을 내포한 것으로 여겨지더군요.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결말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야한 장면이 등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유난히 자세한 성교 혹은 성충동 장면에 대한 묘사가 많이 이루어져서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출판사에서는 'S 파트너'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홍보에 사용하는 것 같지만, 성적 묘사 자체는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극의 진행과 메시지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 중 장점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국내에서의 인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정말 꾸준히 읽고 있지만, 최근에 발표된 여러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 소설은 사회파 소설 특유의 '성실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물론, 이 소설이 '죽기 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의 범주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물음표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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