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의사
포프 브록 지음, 조은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당연한 이야기지만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는 책 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지 못하는 책은 보통 몇 장에서 몇 백장 읽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접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물게는, 미처 감상을 정리 못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소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긴 하죠.) 이 책 또한 심각한 위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 잘 피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야말로 이 책을 잘 소개할 수 있겠구나.'라는 책임감 같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Charlatan: America's Most Dangerous Huckster, the Man Who Pursued Him, and the Age of Flimflam) 로 다소 긴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2008년 2월에 발간되었더군요.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뻔뻔한 사기극을 펼친 의사 'John. R. Brinkley(이하 브링클리)'와 그를 끝까지 뒤쫓은 'Morris Fishbein(이하 피시바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뻔뻔한 사기꾼이라 불리는 브링클리는 시들어가는 정력을 회복시켜주겠다며 남성들에게 기이한 외과수술법을 소개한다. 그의 치료법은 단순했다. 염소의 고환을 사람의 음낭에 넣는 것이었다. 이렇게 염소 고환 이식술을 통해 발기부전 치료법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는 곧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는데, 미국 의사들의 평균 소득이 7,000달러에 못 미치던 때 자그마치 1,2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그는 단순한 돌팔이 그 이상이었다. 그의 외과의사로서 능력보다, 마케터로서의 재능이 훨씬 뛰어났을지도 모른다. 광고를 위해 라디오 방송국과 송전탑을 짓고,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컨트리 뮤직을 라디오에 도입하기도 했다. 브링클리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의학적인 조언을 함으로써 수많은 가정을 병들게 했고, 염소 고환 이식술을 통해 수많은 환자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더해져, 그는 주지사 출마까지 하게 된다.

돌팔이 의사 줄거리 (출판사 제공)


이 책은 작가가 재구성이나 개입을 통해 실감 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역사적인 사실 여러 가지를 차곡차곡 쌓아 만든 책이니까요. 일종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책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 중 몇 가지 단면만을 잘라내 서사를 만들고,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 자료의 나열로 인해 지루해지거나, 당대의 유명인으로 추종자가 많았던 브링클리의 자료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야기를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영리한 선택을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돌팔이 의사이지만 사실은 돌팔이 의사와 (유력한 의학저널인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 편집장이자 돌팔이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피쉬바인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두 인물 간의 라이벌 같은 구도를 생성합니다.



일단 이 책의 번역이 형편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이 책은 의학 논문과 같이 길게 늘어지는 문장의 사용빈도가 높고, 전문적인 단어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잘 짜인 다큐멘터리 같은 책인지라, 감칠맛 나는 진행 또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역자는 문장의 자연스러운 변화나, 적절한 부사의 사용 등에 있어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은, 이 책을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보다는 초벌 번역된 의학논문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역사나 의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멸균 수술의 선구자 조셉 리스터'라는 표현은 '무균수술의 선구자 조지프 리스터' 가 적당한 표현이겠습니다.)


역자의 이런 '노력 없는' 번역은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책의 가치를 낮추는데 기여합니다.

원문의 내용이 잘 짜여 있었다면, 번역의 단점도 가려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브링클리와 피쉬바인과의 갈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음에도 큰 줄기에서 빠져나오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허용합니다. 책을 읽은 후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났다가 돌연히 사라집니다. 제가 이 책 <돌팔이 의사>와 비교로 삼았던 책은, <수술의 역사>라는 책인데요. <수술의 역사>는 조지프 리스터의 일생과 그가 주장한 무균 요법으로 변화되는 세상에 관한 책으로 <돌팔이 의사>와 유사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의 역사>는 주요 인물의 동선과 업적이 큰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잘 추슬렀고, 이 책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러 반점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볼 구석이 많은 책입니다.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들더군요

1. 위안으로 삼을만한 건, 브링클리가 사용하던 광고방법이나 선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특정인의 선동에 대한 제제로 작용할 방송법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또한 의료법의 개선, 의사면허의 강화 같은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결국 의학에 있어서는 Brinkley 같은 이들이 주류에서 각광받기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인류가 오점을 통해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또, 라디오를 통한 블루스 혹은 힐빌리 음악(컨트리음악)의 송출로 이런 음악이 널리 퍼져나가게 된 점도 위안으로 삼을만하겠군요. 블루스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어렵죠.


2. 반면 또 다른 돌팔이들과의 싸움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빼어난 부자, 엔터테인먼트로 쌓은 보스 이미지, 아름다운 아내와 자식들. 평등, 존중이 아닌 애국심에 호소, 여러 도덕적인 오점이나 능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약자와 소외된 계층에 강력한 지지를 얻으며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여러모로 이 책의 주인공인 브링클리를 닮았습니다. 작가조차 이 책이 러시아와 한국에서 번역될 수 있었던 건, 브링클리가 도널드 트럼프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본인의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었습니다. 브링클리는 주지사 당선에 실패했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에까지 올랐으며, 현재도 공화당의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입니다. 어쩌면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의료의 변두리에 무허가 약장수가 있고, 거기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건 오래된 일입니다. 2023년 의학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신약의 개발이 상상과 동시에 이루어지고, 최첨단 수술법이 여러의, 학자들에게 교차로 검증을 받으며 완성해 나가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애국심에 의해서 더 크게 포장되는 원천기술, 과장된 선전을 통해 효과가 뻥튀기 되는 수술법,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힘든 비과학적인 의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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