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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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위즈덤하우스, 2023년)

#연쇄살인자의살인은정당한것이고중범죄자들은불태워서죽여도좋습니다?

한때, NCIS라는 미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캐릭터 간의 궁합이 뛰어난 드라마였습니다. NCIS에서도 주인공 '깁슨(마크 하몬역)'과 법의학자 '애비슈토(폴리 페럿 역)'의 연기 호흡은 백미였습니다. 실행력과 직감이 뛰어나며 카리스마 있는 깁슨과 그가 총애하는 천재 법의학자(그리고 고스족) 애비슈토와의 관계는 마치 사이좋은 부녀관계처럼 비추어지곤 했었죠.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서로를 성장시키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관계였던 둘의 관계는 긴 시리즈 내내 구성원 간의 끈끈함을 설명해 주는 상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퍼핏 쇼>라는 소설은 깁슨과 애비만 따로 떼어내 진행되는 형사 소설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Puppet 은 꼭두각시를 의미하는 단어로, 원제인 <puppetshow> 란 인형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소설을 읽기 전, 제목과 줄거리에서 예상되는 이 글의 스타일은 고어한 범죄물이었습니다. <꼭두각시 살인사건>, <법의관>시리즈처럼 살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질식할 것 같은 압박에, 공포 소설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런 소설 말이죠. 실제로 이 소설 속 살인 또한 끔찍하면서도, 기괴한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습니다. 특정한 순간을 제외하고 이 소설은 적당히 무거운 수사물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여기에는 사회 부적응자인 틸리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에서 우러나는 따뜻함이나, 포의 시니컬함에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는 유머러스한 대사 같은 부분들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컴브리아 지역의 선사 유물 ‘환상열석’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이 연달아 발견된다. 두 번째 시신이 발견된 이후 중범죄 분석 섹션이 수사에 참여하고, 곧이어 발견된 세 번째 시신을 조사하던 중 충격적인 자료를 획득한다. 시신의 몸에 정직된 경관 ‘워싱턴 포’의 이름이 새겨져 있던 것. 중범죄 분석 섹션의 경위 ‘스테퍼니 플린’ 은 포가 다음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포의 업무 복귀를 결정한다. 한편 환상열석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태워 죽이는 잔혹한 수법 때문에 이 연쇄살인범은 이른바 ‘이멀레이션 맨’으로 불린다.

포는 이멀레이션 맨 검거를 위해 업무에 복귀하고, 시신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천재 데이터 분석가 ‘틸리 브래드쇼’를 만난다.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만 경악스러울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한 틸리는 부서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능력에 주목한 포는 틸리를 자신의 수사팀으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워싱턴 포와 틸리 브래드쇼, 스테퍼니 플린과 또 다른 경관 킬리언 리드까지, 이멀레이션 맨을 잡기 위한 수사팀이 꾸려졌다. 수사팀이 서서히 합을 맞춰가는 와중에 네 번째 희생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은 끝없이 미궁에 빠져든다. 네 명의 피해자들, 그리고 다섯 번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포와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가운데 수상한 우편물 하나가 포에게 도착한다. 평범한 갈색 봉투 안에 든 것은 흔한 엽서 한 장. 엽서에 적힌 짧은 메시지는 사건을 다시 원점으로 돌린다.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감당하기 힘든 이멀레이션 맨의 정체가 드러나고, 포는 사건의 어둠보다 더욱 어두운 자신의 과거에 다가선다.

퍼핏 쇼 줄거리 (출판사 제공)


한 명은 직관이 뛰어나지만 과도한 행동력을 가진 돌 아이 형사, 또 다른 한 명은 뛰어난 천재 법의학자지만 사회생활 부적응자, 이렇게 두 명의 주인공이 나란히 극을 이어가는 추리소설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이미 여러 소설이나 티브이쇼에서 이런 조합이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퍼핏 쇼>는 정석에서 크게 벗어남 없이 순탄하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포는 틸리의 재능을 통해 자신의 직관력을 뒷받침해 주는 단서를 확보하고, 사회 부적응자였던 틸리는 정의로운 포를 통해 인간적인 성장을 거듭합니다. 이렇게 캐릭터가 쌓이는 과정과 기만 없는 반전은 이 소설의 장점입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이 소설의 메시지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퍼핏 쇼>에서 연쇄 살인은 '살인에 대한 욕구'보다는 복수심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제목인 <퍼핏 쇼>가 의미하는 인형극은, 소설을 다 읽은 시점에서 다시 보았을 때 주인공으로 느끼고 이입했던 인물들이 사실상 살인사건의 배경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 소설 속 살인범의 사연은 끔찍하고 동정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단 한 건의 살인사건도 막지 못했는데다가, 심지어 이야기가 끝나는 그 순간에도 살인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죠. 주인공의 기지나 추리에 의해 살인사건이 멈춰진다거나 늦춰지지 않고, 주인공의 행동은 범인에게 실마리를 주게 되거나, 복수와 관계없는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과장된 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살인범을 찾아가는 추리만큼이나, 성공적인 복수에 대한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는 마치 '연쇄 살인자의 살인은 정당한 것이고, 중범죄자들은 불태워서 죽여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이야기꾼을 만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쩌면 누군가한테는 그것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추리 소설이란, 권선징악이 기본이고, 심지어 악당이 민병대(혹은 자경단)일 때에도 마찬가지로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꼰대 독자 쪽입니다.

살인범은 심각하게 불우한 과거를 지니고 있고, 피해자들은 살인범의 과거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인범에게 동정의 여지가 많고 피해자들 모두를 죽일 각오였다면, 이 소설은 자경단 (혹은 민병대) 소설로 서술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경찰 주인공 캐릭터의 성장이나 살인사건의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됩니다. 따라서 결말부에 이르른 독자의 입장에서, 경찰에 이입하기도 살인범에 이입하기도 혼란한 결말이라고 느껴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점이 이 소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추리 소설적 측면에서 봤을 때 결론이 독자를 기만하는 타입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만적 >> 후보군에 없던 범인이 갑자기 나타남) 다만,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충격적인 참신함 또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비호감에 가까웠지만, 이 소설의 호불호는 개인의 취향이 개입될 여지가 높겠네요. (이야기에 녹아있는 진한 사연과, 거듭되는 반전, 독특한 캐릭터가), 이야기의 구성이나 메시지보다 우선시 되는 독자라면 더 쉽게 만족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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