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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뉴로맨서 - 환상문학전집 21 ㅣ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1. 'SF 고전 읽기'의 시도를 계획하고 첫 번째로 산 책입니다. 사이버 펑크의 걸작이라는 화려한 수식으로 판촉 하는 책으로 '1985년 휴고상', '1987년 성운상' 등 유수의 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공각기동대, 매트릭스와 같은 뛰어난 영상물에 영감을 준 소설로 유명합니다.
2. 가상세계 판타지의 시발점이자 명작으로, 잘 읽히고, 흥미진진하고, 근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영험한 장르소설로 이 소설에 접근한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이 소설의 구매 후기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대략 이해 가능합니다. '번역은 엉망이지만 인내를 가지고 읽으면 보람 있는 SF'라든지, '진입 장벽은 높은 편이지만, 조금만 버티고 나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같은 댓글은 (제 입장에서는) 이 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위키 피디아 혹은 주석이 주렁주렁 달린 SF 블로거의 가이드를 따라 읽은 후에야 자세한 내용이 이해가 될 정도로 까칠한 가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독성은 단순히 오역의 문제라고는 여겨지지 않더군요.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은 갑작스러운 '줌인', 혹은 '줌 아웃'이 수시로 이루어지고요, 때로는 흐름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대화가 지나치게 늘어지는 등 뒤죽박죽 이어집니다. 사건 또한 기승전결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이미 발생한 후 사건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거나, 갑작스럽게 인물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장면도 있습니다.
사실 역자는 오히려 원문의 난해한 가독성을 부드럽게 만들어 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읽을만하네,'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번역조차 원활하게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예컨대 원 작가가 의도적으로 창작한 문장 변화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 중에 적잖은 이물감이 있었던 것 같고, (독자든 번역 가든) 당대 미국 하위문화에 대한 완전하지 않은 이해도 또한 이 소설의 낮은 가독성에 영향이 미쳤을 것 같습니다.
3. 가독성이나 번역의 품질보다 이 소설에 대한 불만이라면, 딱히 의의를 찾기 힘든 소설이라는 겁니다. 이미 많은 후대 장르문학에서 이 책의 장점을 쏙 빼먹었고요. 일부 문학들은 원작의 장점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라면 이 소설만이 가지고 있었을 출중한 개성이나 독창성들은, 2020년 독자들에게는 (무수한 장르소설 속 차용으로 인해) 오히려 클리셰처럼 느껴지더군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지나치게 실험적인 시도로 내용이 좀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부정적인 측면에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독창적인 이미지조차 열렬한 추종자들에 의해 정리된 여러 해석들에 의지하는 컬트적인 가치를 가질 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