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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웨이크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9년 4월
평점 :
식스웨이크 (아작, 2019년)
원 제 Six Wakes (2017년)
이 소설이 '성운상'에 최종 노미네이트되었다고 마케팅을 하더군요. 그 덕분에 '성운상'이라는 상을 찾아보게 되었네요. 일본 SF 행사에서 그해 발행된 뛰어난 SF 소설을 국내와 해외로 나누어 '장편 SF', '단편 SF'에 시상하는 상이더군요. 1970년도부터 시행되었으니 어느덧 50년이나 된 상인데, 수상작 명단의 일본 내 수상작이나 해외 단편은 다소 생소하지만, 해외 장편 중 제가 접했던 소설은 대체로 뛰어난 소설로(히페리온, 노인의 전쟁 등) 읽어보지 못한 나머지 수상작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점차 마니아를 넓히고 있는 국내 SF 소설 시장에도 권위 있는 상이 생겨 독자에게 소설 구입의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찾아본 봐, 이 소설은 성운상 수상은 하지 못했더군요……
리뷰를 접한 후 구입하기 된 책인데, 선행 독자들에게서 번역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은 책이었습니다. 번역에 관해서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소설의 첫 100여 장을 넘길 때까지 '너저분한 번역'에 몰입에 방해가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불만보다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앞섰고, 곧 흥미진진함에 압도되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건 뛰어난 액션 영화, 뛰어난 SF 영화, 뛰어난 재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니 자막이 영어 자막이건, 중국어 자막이건 불편하기는 해도, 결국 200Km 청룡열차 같은 몰입감, 나이아가라 폭포수 같은 흥건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줍니다.
상당히 흥미로웠던 건 '마이드 맵'이나 '클론'등 이 소설의 뼈대를 형성하는 설정보다는, SF 적 상상력으로 완성된 사회에서 도미노처럼 발생 가능한 현상에 대한 서술이었습니다. '정신 복제가 가능하고, 생명이 연장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이색적 도덕적 규범들'이나, '살인이 일시적인 망신거리에 준하는 놀림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이야기 중간중간 끼워 넣는데, 상상력이 대단히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작가 한 명의 상상력이라기보다는 여러 관련 학자들이 모여 토론 끝에 완성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알쓸신잡'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리뷰어들에게서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과정에서 묻어 나오는 흥미진진함이 빼어난 소설이었습니다. 빠른 전개에 참신한 소재가 조합된 이야기의 흐름은 마치, 상대 선수를 코너에 몰고 정신없는 두들기는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전과 같았습니다. 빠져나갈 도리가 별로 없더군요. (시점의 변화에 따라 주요 이야기 흐름에 정체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몇 장을 슬쩍 넘겨서 결론을 먼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요.) 따라서 소설의 결론은 나름 참신했지만 정신없이 지나갔던 과정에 비해 지나치게 잠잠해서 임팩트가 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밀폐된(?) 우주선에서 죽임을 당했다.'로 요약 가능한 이 소설은 살인범의 존재를 추리하는 흥미진진함보다, 작가의 상상력이 더 기억에 남게 됩니다. 양념치킨을 시켰는데, 치킨도 평균 이상이었지만, 치킨무가 너무 맛있어서 치킨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이색 맛집' 음식같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