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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살인자의 딸들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원 제 The Murderer's Daughters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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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미
2019년 하반기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읽는 동안에도 재미있었고, 읽은 후에도 한참 동안 여운에서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장점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다른 책들과 달리 장점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살인자의 딸로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낸 자매의 성장을 다룬 소설입니다. 도입부에, 이야기의 원인이 되는 '살인'을 다룬 장면 이후로는 충격적인 이벤트 없이 줄곧 자매의 역경을 비추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들의 불행 그 자체를 묘사하거나, 불운을 헤쳐 나가는 각자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더군요. 도덕적인 판단을 최소한으로 하고, 자매가 각자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인과관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다큐 같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의 개입을 배제하고, 인위적인 감정의 고조를 자아냄 없이,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심심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책의 어떤 면모가 독자인 저를 끌어들이고, 호응을 유도했을까요,
(개인적인 의견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겠네요.) 이 책의 장점은 이야기가 채워진 공간과 공간 사이의 적절한 활용인 것 같더군요. 쉽게 '여백의 미'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네요. 독립영화를 볼 때면 장면이 끝나도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허공에 일정 시간 카메라가 머무르는, 공백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감독은 이런 효과를 통해 관객의 느낌이나 감상을 달아오르게 하곤 합니다. 이 소설의 어느 부분들은 장면이 끝나도 빈 곳을 계속 비추면서 주인공에 대한 몰입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주더군요. 실제로 많이 리뷰어들이 이 책의 감상을 '허무', '공허' 같은 점성 있는 느낌으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설의 가독성은 좋은 편입니다. 496쪽의 문장은 성기고 쉬이 읽힙니다. 그에 반해 여운은 길게 이어지는 편입니다. 두 자매의 시간 중 중요한 시점의 일부를 쪼개서 돋보기처럼 비추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마치 1000쪽이나 1500쪽가량의 2권이나 3권쯤 되는 두꺼운 소설의 주요 장면만을 편집해 보여주는 소설 같았습니다. 인디영화의 공백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점도 유사합니다. 흡입력 있으며 재미있고, 세상에 대한 생각을 몇 뼘 더 깊이 있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