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델리아 오언스'가 등장인물의 묘사에 공을 들였는지, 아니면 쓱쓱 써젖힌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극의 초반을 형성하는 '어린 소녀의 늪지 성장'이었고, 뒷부분의 시련들이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녀의 성장을 지켜보게 되고, 응원하게 되면서 결국 소설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게 되더군요.
소설 전체에서 작가의 연륜이나 상식이 묻어나고, 소소한 지적 유희가 충만하게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늪을 정말로 가까이서 관찰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문장을 읽으며 자연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환기 시키기도 하고요. 자연에 빗대어 인간의 오만이나 탐욕을 적시하는 문장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생생한 동식물에 대한 묘사에서는 전문성이 느껴졌습니다. (동물학 박사인 작가의 태생으로 말미암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설과 자연과학과의 접목에 있어서 그동안 등장했던 그 어떤 소설보다 우위에 있는 소설입니다.
물론 작가의 첫 번째 책이어서 일까요, 균형 잡히지 못한 부분 또한 도드라졌는데 잦은 법정 장면이나 마지막 반전은 사족처럼 느껴지더군요. 오히려 주인공이 살인사건에 연루되기는 순간을 숨기며 진행하다 보니 주인공의 감정을 100%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작은 반발감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소설의 진정한 장점은 반전의 묘미가 아닌 성장에 있으니까 소설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여전히 손색이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소설의 감동은 독자의 성장에 비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특별히 어떤 감정을 녹아낸 것도 아닌데, 작가가 그린 그림을 순서대로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파지는 경험을 하게 되더군요. 이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진행 중인 '올해의 책'에 투표했는데, 올해 발간된 책 중 읽은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올해를 통틀어 가장 좋은 책인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