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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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살림, 2019년)

원 제 Where the Crawdads Sing (2018년)





저는 이런 유의 소설이 더 이상 새로운 부류의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과 유사한 일련의 소설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있고 그(혹은 그녀)는 자연이나 순수함 혹은 시대상을 대변합니다. 주인공에게는 크고 작은 시련이 지속되는데, 일련의 일들은 대체로 시대의 흐름과 괘를 같이 합니다. 주인공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시련을 극복하게 됩니다. 반복되는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점차 성장하게 됩니다. 비슷한 류의 다른 책으로 '펄 벅'의 '대지',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나, 영화로 비교하자면 '포레스트 검프'가 있겠네요.

위 세 가지 예 중 한개라도 접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책은 더 이상 새로운 않지만 그냥 좋은 책입니다. 명작의 품격을 지닌 소설로 비교적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당대의 대표 소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압도적인 장점은 인물입니다. 장르소설의 창작법에 대한 책인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에서는 '인물'이 가지는 중요성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인물 묘사는 엄청나게 힘든 작업이지만, 그만큼 커다란 보상이 따른다.(중략) 그렇다면 이제 막 창작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초보 작가라면 어떻게 서스펜스를 만들어야 하는가? 첫째, 가장 중요한 지침은 독자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너무 뻔한 말이라서 작가들이 잊고 산다. 독자들이 애정과 관심을 가진다는 말은 그들이 등장인물에 흥미를 느낀다는 말이다. 플롯만으로는 이렇게 만들 수 없다.

매일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랑에 빠지면, 병에 걸려 죽는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다면, 그땐 모든 것들이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중

작가인 '델리아 오언스'가 등장인물의 묘사에 공을 들였는지, 아니면 쓱쓱 써젖힌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극의 초반을 형성하는 '어린 소녀의 늪지 성장'이었고, 뒷부분의 시련들이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녀의 성장을 지켜보게 되고, 응원하게 되면서 결국 소설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게 되더군요.

소설 전체에서 작가의 연륜이나 상식이 묻어나고, 소소한 지적 유희가 충만하게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늪을 정말로 가까이서 관찰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문장을 읽으며 자연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환기 시키기도 하고요. 자연에 빗대어 인간의 오만이나 탐욕을 적시하는 문장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생생한 동식물에 대한 묘사에서는 전문성이 느껴졌습니다. (동물학 박사인 작가의 태생으로 말미암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설과 자연과학과의 접목에 있어서 그동안 등장했던 그 어떤 소설보다 우위에 있는 소설입니다.

물론 작가의 첫 번째 책이어서 일까요, 균형 잡히지 못한 부분 또한 도드라졌는데 잦은 법정 장면이나 마지막 반전은 사족처럼 느껴지더군요. 오히려 주인공이 살인사건에 연루되기는 순간을 숨기며 진행하다 보니 주인공의 감정을 100%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작은 반발감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소설의 진정한 장점은 반전의 묘미가 아닌 성장에 있으니까 소설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여전히 손색이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소설의 감동은 독자의 성장에 비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특별히 어떤 감정을 녹아낸 것도 아닌데, 작가가 그린 그림을 순서대로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파지는 경험을 하게 되더군요. 이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진행 중인 '올해의 책'에 투표했는데, 올해 발간된 책 중 읽은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올해를 통틀어 가장 좋은 책인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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