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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페리온
댄 시먼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히페리온 (열린책들, 2009년)
원 제 Hyperion (1989년)
어느덧 먼 과거 같은 일입니다. 도서 정가제 개정 전 파격 할인 행사를 진행했던 온라인 서점에서 마지막으로 주섬주섬 주워 담았던 책 중에 한 권입니다. 그동안 책을 선뜻 꺼내 들지 못했던 이유는 나무 인간이 외로이 서있는 책의 표지가 와닿지 않았고, (SF 소설의 표지가 매번 진지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이 책의 표지에는 여전히 비판적입니다.) 첫 몇 장을 넘길라 치면 대단히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제 책장에 깊은 곳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여러 책들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몇 장에서 추측할 수 없는 이야기로 진행된다든지, 너무 많은 고유 대명사가 대규모로 등장하면서 '예상 가능한 나쁜 소설'이라고 단정할뻔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100쪽을 차분히 넘기고 나서는 엄청난 기세로 책을 읽어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종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한두 정거장 정도는 지나치고 책을 더 읽는 편을 선택하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드라마, SF, 서부극, 공포까지 각종 장르에 걸쳐있으며, 모든 장르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추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사는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의 삶을 나열하는데, 때로는 우리와 맛 닿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삶을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학자이자 아버지인 '솔 바인트라우브'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슬픔에는 너무나 감정이입이 돼서 그 부분의 책을 도려내어 단편으로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나머지 이야기의 서사도 뛰어납니다. 각 이야기의 결론은 대체로 화자 각자가 슈라의 크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야기 간에 접점이 떨어지는 단점을 포함해도 지나치게 뛰어난 소설입니다.
이 책은 4할 타율에 도전 중인 야구선수가 심지어 홈런까지 30개씩 때려주는 느낌의 소설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자마자 이 책의 후속편을 구입했으며, 후속편을 읽을 때는 절대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최근에 접했던 여러 SF 통틀어 가장 수작입니다. 다만 분량의 압박이나 가독성으로 진행하기까지 상당한 시작이 걸리니 시간과 참을성이 충분한 독자일수록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