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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지음, 해란 사진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그림책은 다음에 올 사람, 아직 미정인 존재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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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면서 비로소 다시,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얇은 그림책장을 넘기는 그 시간은 지친 육아 중에 가장 힐링이 되는 순간입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책이 쌓여가면서, 눈에 익은 작가들도 하나, 둘씩 늘어났어요. 그러면서 '작가님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 10인의 인터뷰를 모은 책입니다. 최혜진 작가는 '돌파하는 힘'이라는 두 단어를 품고 10명의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권윤덕, 소윤경, 이수지, 유설화, 고정순, 이지은, 유준재, 노인경, 권정민, 박연철이 그 작가들입니다. 사실 행복보다 불행을 더 찾기 쉬운 이 세계에서 작은 그림책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자리한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없습니다. 안 그래도 책이 팔리지 않는 출판계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작품들을 출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마음 깊이 와닿는 바가 많았어요. 최혜진 작가님이 말한, '돌파하는 힘'이 느껴지는 작가님들이었습니다. 작가님들의 인터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을 추려봤어요.
나를 지키고 키워가는 힘은 이미 내 몸이 지니고 있어요. 그 믿음을 잃지 말았으면 해요. 생명은 과정이지만, 미래의 어떤 것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매 순간 자체가 그 목적이기도 합니다.
거절을 당하는 당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거절당한 이후에 내 반응은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먼저 거절의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습관을 버리세요.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두면 내가 부족했고, 내가 비호감이고, 내가 좋지 않은 그림을 그려서 거절당했다는 식의 자기비판으로 귀결되거든요. 그런데 성공은 100% 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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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려고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데, 그런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구멍이 있는 모습 그대로 부딪히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채워주기도 해요. 우연에 기대면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 더 마음 편해요. '구멍 좀 있으면 어때?' 이 정도면 되었지' 하는 마음으로, 순간의 절실함으로 거기 있으면 되잖아요.
본성에 맞는 선택인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땐 반대로 해보면 알 수 있어요. 늘 일을 벌이며 바쁘게 살지만, 본성에 어긋난 느낌에 시달린다면 느리게 살아보는 거예요. 이때 자신의 반응을 면밀히 관찰해야 해요.(중략) 아무리 내 몸, 내 생각이어도 노력 없이 파악할 수 없어요.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내 목소리를 분간하려면 노력, 그거 해야지요.
저는 왜 자기표현이 중요한지 이야기할게요. 표현하지 못한 감정 안에 오래 있다 보면 세상 보는 눈이 왜곡되더라고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고요. '네가 힘들어서 죽어 나간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리'라는 상태는 진짜 아픈 상태예요. (중략) 주변과 감응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감응해야 해요. 자신의 현재를 이해하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나를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과 연대할 수 없고, 연대할 수 없으면 열린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아, 그렇구나. 일이 벌어졌구나. 그럼 겪어야지. 지나가야지'라는 식으로 반응해요. 제가 닮고 싶은 삶의 태도에요. 삶의 고난이 생길 때 팥할머니처럼 힘듦을 받아들이고 겪어내며, 역경 속에서 살아내는 방식을 배우고 싶어요.
응급실에서 여러 바늘을 꿰맬 정도로 입가가 찢어졌는데, 평소에 무척 엄한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면서 밝게 웃으시더라고요. 보통 아이가 다치면 놀이를 그만두는데, 저희는 병원에 다녀와서 남은 경기를 마무리했어요. 그다음 날에도 야구를 했고요. '다칠 가능성이 있다고 야구를 안 하진 않는다, 경기를 하다 보면 다치기도 하니 툭툭 털고 최대한 가볍게 대처한다'는 태도를 보여주셨어요. 살다 보면 겪게 되는 굴곡을 어떤 자세로 마주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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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는 상황이 막상 벌어져도 그렇게까지 큰일은 아닐 때가 많아요. 언제나 생각이 실체보다 크다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하고요. '일단 안 될 거야'라고 마음먹고 시작하세요.(중략) 자잘한 성취의 감각이 쌓여야 더 큰 용기를 낼 줄 알게 돼요.
자기 성찰은 자동으로 되지 않아요. 불편하고 어려워요. 그럼에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인간다움 같아요. 타락한 세상인 것도 맞지만, 추악함 속에서 선함을 발견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역시 인간이잖아요. 인간의 아이러니를 관찰하고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창의성이 변주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지만, 조합을 달리하면 전에 없던 화학 작용이 일어나요. (중략) 익숙한 재료를 손에 쥐고 섞어보며 발상을 하면 백지에서 시작할 때보다 관념의 덫에 벗어나기 좋아요. 혼종과 뒤섞기는 기성의 틀을 비껴가면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 같아요.
작가님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삶에서 무언가 넘어서야 하는 일이 생길 때, 그 '돌파하는 힘'을 얻는 기분이 들었어요. 인터뷰를 읽은 후 작품들이 또 새롭게 보일 것 같아서 이분들의 그림책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과 생각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