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와 혐오 - 모성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재클린 로즈 지음, 김영아 옮김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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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줄평 :

개인적인 경험에 머물러 있던 '모성'에 대해 다각도로, 다방면에서 생각하게끔 도와주는 책.


모성은 사랑이자 잔인함이다

이 책은 모성의 양가성(모성은 사랑이자 잔인함이다)을 핵심적 쟁점으로 다루고 있는, 우리 시대의 모성 신화에 대한 비판서이다. (중략) 이 책은 우리 시대에 어머니가 숭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라는 익숙한 주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숭배와 혐오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태도 뒤에 자리한 비역사적인 모성의 이상과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하는 모성의 경험을 대조하며 묻는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사회적 약속이나 내적 삶 또는 역사적 불의 따위를 외면하려는 것일까. 대체 우리는 어머니에게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단 말인가.

p.275~277 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말처럼 저자는 현대에 만연한 모성 신화를 고대 그리스 문학작품부터 현대의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저서들에서 나타나는 모성의 모습을 통해 이제까지의 '모성 신화'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데메이아부터 21세기 주목받는 작가 엘레나 페란떼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폭넓은 지식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모성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는데, 이 책에는 트럼프도 나온다.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을 이런 교양서에서 보는 건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작가는 영국에서 아이를 낳는 외국인 어머니들이 '의료 관광객'으로, 영국의 납세자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사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들이 영국 정부의 입국 자격 심사를 기다리며 깔레 정글(프랑스 깔레의 난민캠프)에 억류되어 있다는 기사를 제시하며 이 기사에서 반영된 차별받는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탄에 잠긴 모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면을 지적한 것이다.

캠프에 기거하는 한 16세 소년은 수단의 내전을 피해 도망 나온 뒤 2년간 어머니와 연락이 끊겼다. (중략)부재하거나 실종된 이 어머니들이 바로 <더 선>지가 비난을 퍼붓고 임신한 "의료 관광객들"의 또다른 얼굴이다. 완전히 무시되건 또는 비난의 표적이 되건 간에, 두 어머니상의 배후에는 공통적으로 이주와 그에 따르는 고통이라는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동시에 고통받는 모성, 아이를 잃은 어머니는 이상적인 모성상의 주요 이미지이기도 하다. 질투 많은 신에게 자식 열넷이 모두 살해당한 후 애통해 하는 니오베, 예수의 죽음으로 비탄에 잠긴 성모마리아 삐에따상이 가장 잘 알려진 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숭고해야만 하며, 어머니의 괴로움은 구원의 힘을 갖는다. 온 세상의 고통을 아로새긴 얼굴로, 어머니는 모든 이를 대신해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고 위로한다. 어머니의 아픔 뒤에 자리한, 완전히 혼란에 빠진 지속하게 부당한 세계는 결코 드러나서는 안된다.

p.22~23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모성신화를 꼬집는다. 더불어, 서구 사회에서 이제까지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아이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상 신화, 일하는 엄마들에게,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지워지는 차별적 시선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짊어지는 고통과 차별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part1 사회적 차별에서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 서구 세계에서 우리는 어머니에게 어떤 짐을 지우며, 어떤 실패와 불의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비난과 요구라는 두가지 모습으로(요구는 비난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두려움은 과연 무엇일까? 왜 우리는 어머니 앞에 두려움을 쌓아놓고 그걸 해소해주길 기대하는 것일까?

p.53

현대 서구나 우리나라나 모성이 차별받는 상황은 똑같다는 것. 다만 그 정도가 덜하거나 더하거나의 차이였다. 여성이 임신을 하면 퇴직을 강요받는 상황, 아이가 있다고 하면 취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 아이가 생기면 돌봄의 무게가 어머니에게 더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 등등은 서구나 우리나라나 비슷했다. 제도적인 문제를 짚어내기에 앞서서 사회는 손쉽게, 모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를 덮으려고 한다.

애착 육아법은 모유수유협회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모유수유를 어느 정도 지속할 것을 권장한다. 어머니에게는 경력을 쌓는 길에서 물러나 아기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지시 사항이 하달되는데, 한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기에게 복종해. 안 그러면 재미없어."식이다. 그야말로 인종차별적, 계급적으로 편향된 관점이다. 왜냐하면 월마트에서 일하며 홀로 아이를 돌보는 라틴계 엄마에게는 그러한 선택이 전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p.115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공감한 파트는 '증오하기'였는데, 재클린 로즈는 이 파트에서 어머니의 솔직한 속내를 들여다볼 것을 권장한다. 작가는 정신분석학의 논문들과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저서들을 주로 인용하고, 비판도 하면서 '사랑이 넘치는 모성'이면에 자리한 어머니의 속마음을 지적한다. 사랑이 넘치는 이면에 있는 어머니들 겪는 고통들을 지적한 내용들이었는데, 이해가 좀 어려운 파트이면서도 공감 가는 글귀들이 많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름만 들었지, 이번에 구체적인 내용들을 접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한 번쯤 그녀의 저서를 읽어볼 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레나 페란떼. 저자는 이 신원미상의 이탈리아 작가를 한 챕터를 할애하여 다루고 있다. 이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한 작가인데, 우리나라에는 한길사에서 번역서가 출간되어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엘레나 페란테'로 검색을 하면 되고, 주요 작품명도 여기 소개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 점이 좀 아쉬웠다. 창비에서 출간할 예정이 아니라면, 기존 출간 저서의 이름으로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이 재클린 로즈가 소개하는 내용만으로 작품 내용을 추측해야 하는 건 좀 어려워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챕터였다. 여기 제시된 내용상으로는 매우 매력적이면서 위험한 작가인데, 실제 작품은 어떻게 구현이 되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페란떼의 소설이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크게 공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저 페란떼가 어머니 심리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갈아엎어 그 누구라도 응시하기 쉽지 않은 인간됨의 양상을 공포이자 미래의 전망으로 제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문학적 가공을 거쳐 임신을 모든 해체의 원형으로 그리며, 만약 세상이 가장 억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환상으로 버리기만 한다면 스스로를 자각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는 결정적인, 그리고 아마도 전혀 예기치 못했을 변형을 통해 이러한 전망을 정치적 현실과 뒤섞는다. 적어도 어느정도는 그 정치적 현실에서 배태된 것이다 그에 기생해 맹렬히 번식하는 전망을 말이다.

p.226

글을 마치며

재클린 로즈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가 제시하는 작품들, 논문들을 보면 지식의 깊이에 감탄을 금할 수 없고, 이를 해석하는 논리 또한 매우 날카롭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매우 아쉬운 점은 번역자가 후기에 밝혔듯이, 정보를 점층적으로 쌓아 올라가는 서술 방식 때문에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문장이 단순하고 명쾌한 스타일이 아니라 읽으면서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그리고 이 책은 페미니즘에 평소 관심이 있고, 에이드리언 리치나 실비아 플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작가들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 읽어야 이해가 빠를 것이다. 나처럼 그들의 이름만 들어본 사람은 책을 읽다가 부지불식간에 쏟아지는 이름들, 저서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데메이아도 불쑥 불쑥 나타나니 이 내용도 잘 아는 사람이어야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기존 지식이 없어도 될 만큼 친절한 각주와 설명들이 붙어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읽다가 각주와 설명들을 읽느라 맥이 빠지고, 다시 이해하기 위해 원 문장으로 돌아가는 작업이 너무 많이 반복되면 책을 읽어나가기가 좀 힘들다.

한국에 첫 소개되는 작가, 재클린 로즈. 이 책은 교양서이다. 그녀가 '당연히 알지?'라는 느낌으로 툭툭 말하는 책들, 그리고 서구 여성들의 역사와 지금 이 시대의 현장들을 읽다 보면 시야가 툭, 트이는 느낌이 있다! 이 얇은 책을 읽고 나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건 참 멋진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먼저 본 사람으로서 팁을 드리자면, '옮긴이의 말'을 책 읽기 전에 먼저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역자분이 이 책에 대해 좀 정리를 해놓은 글이라 그 글을 읽으면 이 책이 어떻구나, 이 작가가 어떻구나 하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창비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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