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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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대학생 시절인 1950년대부터 쓴 소설들을 엮어서 1968년도에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출간한 것이다. 단편소설집이라기에 좀 편하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작가가 1930년대 생이라 그런 건지, 몇몇 소설들은 단어가 생경한 것들도 많았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황석영 작가나 박완서 작가같이 단어를 풍부하게 쓰는, 매우 세심하게 단어를 골라 배치하는 작가님이었다. 읽으면서 번역가가 진짜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매우 독특했고, 이야기의 소재 폭이 넓고,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감정들을 세심하게 그려내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책이다. 1950~60년대 쓴 소설들을 2020년을 사는 내가 읽으면서 공감하는 현실이 좀 씁쓸하기도 했다. 춘향전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리감을 체험했더라면 좋을 텐데, 여기 나온 여주인공들이 처한 현실은 그때 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총 14편의 단편 중에 가장 압도적으로 몰입하며 읽은 작품은 <작업실>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작업실을 빌린 여성이 집주인에게 시달리는 내용이다. 임차인이 남자였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라 읽으면서 얼마나 짜증이 났던지.



집은 남자가 일하기에는 아주 좋다. 남자가 일감을 가져오는 집은,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고 일하기에 딱 좋도록 남자 중심으로 새로 배치할 수도 있다. 남자에게는 일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아준다. 다라서 으레 전화를 받는 일도, 어디 두었는지 모를 물건을 찾는 일도, 아이들이 왜 우는지 알아보는 일도, 고양이 먹이를 주는 일도 기대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아걸어도 무방하다. 방문이 닫혀 있고 그 방 안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안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해 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왜냐,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용납하기 어려울 테니까. 여자가 허공을 응시한 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건 자연의 섭리를 저버린 짓과 마찬가지라고 여길 테니까. 그러니 여자에게 집이란 남자와 같은 곳이 아니다. 여자는 누구들처럼 집에 들어와서 이용하고 마음대로 다시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는 곧 집이다. p.13



<휘황찬란한 집>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개발을 할 것인가 보존을 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는 내용이다. 달걀 장수 풀러턴 할머니네 집이 마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헐려야 하는데,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서명을 받아서 처리하고자 한다. 그런데 메리만이 뭔가 불편해서 이를 거부한다는 내용. 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오래된 마을을 보존하자는 측과, 이를 싹 헐어내고 보기 좋게 새 아파트를 올리자는 측. 누가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의견이 짓밟히는 이 힘의 대결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든다. 이야기는 메리가 서명을 거부하는 데서 끝나지만, 현실이라면 풀러턴 할머니네 헛간은 헐렸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거실에서 오갔던 말들은 이미 바람에 날려 갔다고 메리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의 계획도 잊히고 단 한가지만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들은 승자이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자식들을 위해 집을 마련하려 하고, 어려울 때면 서로 돕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한다. 마치 그 지역사회 안에서 아주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현대식 마술을 찾았으니 한 치의 실수도 없을 것처럼 운운하면서. p.104



단편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우리네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다.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언어로 그려낸 작품들이고, 이야기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은 작품집이었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이번에 새로 출간한 앨리스 먼로의 작품집은 표지들이 정말 예쁘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과 <런어웨이>도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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