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다> 우먼 카인드의 뒷면에 있는 글귀다. 이 문장처럼 이 잡지에는 압도적으로 여성 필자들의 글이 많다.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리뷰 클럽을 신청했다.
Mankind. 인류, 인간이란 이 단어를 Womankind로 바꾼 것이 참 신선했다. 하긴, 인류를 뜻하는 데 굳이 Mankind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 남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에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까. 여성만이 볼 수 있는 영역의 시각을 보여주겠다는 잡지의 사고와 방향성을 잘 드러낸 작명인 것 같다. 그리고 광고 없이 운영이 되는 잡지라는 점과 뉴필로소퍼나 스켑틱보다는 국내 필자들이 보이는 잡지여서 좋았던 책이었다.
이번 호의 주제는 <정치하는 여성들이 가져올 미래> 였다. 주요 인터뷰이가 이번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 인터뷰였다. 기사에는 17년간 시설에서 살다가 나온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사는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감독, 그리고 이와 동명의 책을 출간한 작가, 유튜브 채널 <생각 많은 둘째 언니>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다. 기사의 주요 방향이 이제 정치인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여성'의 입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고 조사를 좀 더 해보니, 이별 대자보를 붙이고 연세대를 자퇴한 것으로 유명해졌고, 장애인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이었다. 정치로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동생 때문이었다고 한다. '장애인'이라는 이 단어 때문에 주어지는 속박이나 차별을 자신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는 걸 깨달은 뒤로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여성 장애인의 성적 욕구에 대한 부정이나 편견, 발달 장애인은 독립은 불가능하다 등의 편견이 있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니, 그녀의 인터뷰가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이제 '순수성'을 의심받는 영역으로 발을 들이는 초년생의 불안감과 개인의 의사가 아닌, 여러 사람을 대변하는 자리에 놓인 정치인의 무게감 등을 이야기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정치는 '공적 영역으로의 모험'이라는 말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해요. 타인을 신뢰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거든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 안에 공적 영역이 존재하고, 그 담론 중에는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끔찍한 것도 있고요. 그럼에도 더 나은 대화를 통해 헤게모니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정치를 할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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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회에 곧 입성할 신인 정치인의 포부가 참 올곧다. 대화를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 페미니스트이자 장애인 인권운동가인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최근 불거진 'N번방' 사건을 보더라도 이 사회에서 여성의 안전은 언제든 크게 위협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말, 고명권의 <묵묵>에 나온다는 '생각한 다음에 살지 말고, 일단 같이 살면서 생각하라'처럼, 그녀가 정치인 장혜영에 함몰되지 말고 '생각 많은 둘째 언니'로서의 감수성도 유지하는, 행동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책 표지의 여성에 대한 내용도 리뷰에서 빼놓을 수 없다. 단정하고 우아하지만 강인해 보이는 이 여성의 이름은 에멀린 팽크허스트. 영국의 시민운동가이고,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여성이다. 그녀는 평소에도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우아하고 고상한 옷차림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 옷차림은 일종의 위장이자 정치적인 전략이었다. 당시 이 여성참정권 운동가의 우아한 패션에 반한 팬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옷차림을 따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이 많아졌다고 했었다고 한다. 정치로서의 패션이자 회원 모집 수단으로서의 스타일이었다. 정말 멋진 전략이다!
당시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받던 탄압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다. 1909년 감옥에 수감된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단식을 시작하자, 매우 끔찍한 강제급식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여성 수감자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그들의 코에 2미터에 달하는 튜브를 꽂아 깔때기로 우유와 달걀 혼합물을 배 속까지 흘려 넣었다. 의사들까지 항의할 정도였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1910년 여성참정권 법안 통과를 막으면서 300명의 여성이 행진하며 수상에게 법안 통과를 청원했는데, 이를 막기 위해 기마경찰대가 투입되었다. 경찰들은 여성들을 내동댕이치고, 사타구니를 걷어찼으며, 옷을 찢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심지어 한 경찰은 여성을 군중 속으로 집어 던지며 '이 여자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 기사는 정말 충격의 연속이었다. 화염병을 던진 것도 아니고,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저런 취급을 할 수 있지? 지금 내가 받은 투표권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많은 여성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중에서 영국에서 온 편지도 내용이 참 좋았다. 영국에서 사는 평범한 여성 세 명이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쓴 것인데, 어릴 적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이를 극복해서 두 딸과 파트너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에이미 브래드쇼'. 그녀가 꼭 파트너와 결혼해서 안정적인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평생 몸무게로 고민이 많았는데, 이를 극복하고 지금은 많은 여성들에게 전문 피트니스 강좌를 제공하고 있는 세라 화이트헤드. 그녀가 새로 샀다는 집에 관한 묘사는 내가 꿈꾸는 삶과도 일치해서 참 좋았다. '나만의 작은 피난처'. 그녀가 그곳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파키스탄에서 나고, 미국에서 자라 지금은 영국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파키스탄 여성들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픈 '말리하 아비디'. 그녀가 꿈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만의 시각이 듬뿍 담겨 있으면서도 너무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은 잡지였다. 매 호마다 나라를 선정해서 찾아가는 점도 참 마음에 들었다. 이번 호의 주제는 영국. 앞서 소개했던 세 여성의 편지 말고도 정원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 버네사 벨의 이야기 등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관점을 경험하고픈 독자라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