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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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의 신작 <일곱 개의 회의>는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박스오피스 1위의 성적을 거둔 작품이다. 전작 <한자와 나오키> 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일 양국에서 모두 큰 인기를 끈 작품으로 알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강자'라는 수식어에 맞게 <일곱 개의 회의>는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흡입력으로 순식간에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도쿄겐덴'이라는 한 중견기업을 무대로 펼쳐진다. 어느 회사에나 있을 법한 주인공들이 등장해 실감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 책의 제목은 <일곱 개의 회의>이지만, 챕터가 총 8개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마다 다른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주인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명인 옴니버스 구성인데,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추적해 들어가기 때문에 끝까지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든다. 작가가 여덟 개의 챕터 중에 독자에게 약간의 휴식시간(?)을 주는 게 '유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챕터 3인데, 유일하게 이 비극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견기업 도쿄겐덴의 만년 계장 핫카쿠는 사내 승진 서열 1위 영업 1과 과장 사카도를 대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며 문제제기를 한다. 누구나 당연히 핫카쿠가 질책을 받으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사카도가 인사부 대기 발령을 받고, 대신 경쟁부서였던 영업 2과 히라사마가 1과 과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이 때 사카도의 말이 인상적이다.

회사에 필요한 인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만두면 대신할 누군가가 나와요.

조직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p.41

히라사마는 사카도의 대기발령이 심상치않음을 깨닫고 핫카쿠를 불러 이유를 묻는다. 핫카쿠가 들으면 후회할 거라 경고하지만 히라사마는 이야기를 해달라 요구하고, 잠시 후 큰 충격을 받은 히라사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1막을 내린다.

그 이후 히라사마는 사카도의 주요 거래처를 교체하기 시작한다. 이에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히라사마가 왜 그런 것인지 궁금해하며 달려들고, 뭔가 큰 흑막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버림받은 이도 있지만, 마침내 흑막을 알아차리고 그걸 밝히기 위해 애쓰는 이도 나온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뒤로 갈수록 빛나는 만년계장 핫카쿠의 활약이다.

회사는 물건을 만들어 고객에게 파는 단체이고, 이 단체의 사회적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는 이익을 위해 이 신뢰를 저버리는 이들이 많고, 이 작품 내에서도 그런 이들이 나온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사소한 비리쯤은, 부정쯤은 눈감아도 된다는 유혹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겉치레의 번영인가, 진실한 청빈인가.

p.494

도쿄겐덴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겉치레의 번영인가, 진실한 청빈인가. 책을 읽으면서 어느 회사에서 흔히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 꼭 회사만은 아니라 어느 단체에서건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던지는 물음은 내게도 유효하다. 사회적 정의를 위해 나의 손해를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눈 감고 나의 이익을 추구할 것인가? 쉽게 답하기 힘든 물음이었다. 모처럼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을 만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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