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환갑'은 듣기 조차 어려운 말이 되었다.

원래 '육십갑자의 갑'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덤으로 인생을 산다는 의미였다.


이제 '환갑'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다.

100세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 번 살아봤으니 이제부터는 제대로 살아보자는 것이다.

너도나도 이모작에 나서는 이유다.


그렇게 곡괭이를 들고 나선다.

놀고 있는 밭도 일구고, 건강도 관리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반나절도 안 되어 알게 된다.

자신의 몸은 이미 농사지을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젊은이들에 비해 체력이 딸리는 것은 당연하다.

기억력도 떨어진다.

농사도구도 내 맘처럼 다룰 수 없다.

농사짓다가 약값이 더 많이 나오겠다고 다시 집을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데 100세 시대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한탄하게 된다.

왜 그럴까?

친구따라 강남갔기 때문이다.

밭을 놀리면 뭐하냐고 조금이라도 일구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무작정 나선 것이 화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이들과 겨룰 수 있다.

거기에 살아온 세월이 연륜이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지금은 재능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를 사는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 있다.

바로 <플라멩코추는 남자>이다.


신중년에게 어려운 부분이 젊은이 세대와 소통하는 것이다.

예전처럼 일방통행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서 고립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어-동사-목적어'로 말하면 젊은 친구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핑계대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이 좋아하는지, 미안한지 결론부터 밝히는 것이 관계를 회복해준다는 것이다.

사실 플라멩코도 마찬가지다.

포크레인은 자신을 위한 춤이었다면, 플라멩코는 버렸던 딸을 위한 춤이다.

신중년의 삶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마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이유는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추천한다.


** 이 책은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아 제 나름의 방식대로 리뷰합니다^^

"모든 파에야가 반드시 스페인 파에야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죠. 파에야의 정석은 스페인 파에야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파에야는 각자의 마음에 있는 겁니다. 추억과 함께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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