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 - 텍스트로 콘텍스트를 사는 사람들에게
박양규 지음 / 샘솟는기쁨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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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야유회를 가면 꼭 해야 되는 일이 있다. 

'숫자세기'이다. 

총무가 바쁜이유다.

할 것도 많은데 인원점검까지 하기 때문이다.


바쁜 총무가 간혹 자신은 빼놓고 사람수를 세는 경우가 있다.

'돼지들의 소풍'이라고 우스개소리를 하게 된다.

이솝우화의 ‘돼지들의 소풍’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돼지 12마리가 소풍가서 시냇물을 건넌 후 숫자를 센다.

“열 하나, 한 마리가 모자라네” 

다른 돼지가 세어도 한마리가 없는 것이다.

세는 당사자인 자신은 빼고 세었기 때문이다.


왜 이 돼지들은 숫자를 확인하는 것일까.

물에 빠진 돼지가 있으면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숫자'는 사랑이다.


성경에도 숫자를 세는 일이 많이 나온다.

민수기는 물론이고 숫자세기는 요한계시록까지 계속된다.

우리는 그동안 그 숫자를 사건으로만 봐왔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볼 때는 모세만 바라보는 식이다.


저자인 박양규목사는 모세와 함께 했던 200만명의 숫자는 영웅의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들은 눈물과 감정을 가진 인격체이며 정서와 삶의 애환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사회의 걱정거리로 전락했고 많은 ‘가나안(안나가)’성도를 양산했다.

그동안 숫자를 역량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인 것이다.

200만명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맞추면 성경본문이 새롭게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할 때, 우리는 사랑하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은 결국 '나'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이 책은 너무 좋다.

성경을 읽는 시선이 따뜻하다.

성경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수께서 그들을 고치실 때,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자체가 중심이 아니었다. 먼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고통을 공감하는 시선이 있었기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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