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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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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사이코패스 테스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중에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해코지 하는 모습을 봤는데, 가해자가 나를 쳐다보며 어떤 손짓을 했다. 어떤 의미의 동작이었을까?' 나는 "너, 죽었어" 하며 주먹을 쥐는 행동이었을 거라고 답했다. 혹시라도 사이코패스에 해당되는 답을 할까봐 걱정하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사이코패스에 해당되는 답은 가해자가 내가 있는 곳이 몇 층인지 층수를 세고 있다, 라고 한다. 진짜로 이용되는 테스트는 아니지만,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이코패스 지수를 걱정하며 답했을 걸로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를 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운 대상이다. 절대로 얽히고 싶지 않지만 그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 방식은 호기심이 생기는데,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는 조금이나마 그 독특한 대상들의 생각과 행동 양상을 경험해볼 수 있게 해준다.


주인공 쿠엔틴(Q_ P_)은 유능한 교수 아버지를 둔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대학생이자 친할머니의 하숙 주택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이미 일곱 살에 선망했지만 아무 관계도 없던 급우를 다치게 했으나 거짓말로 빠져나간 적이 있고, 열여덟 살에는 열두 살짜리 흑인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가 있었다. 그 일로 2년의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지금도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하고 있고 보호관찰관에게 정기 보고를 한다. 어느 날, 그에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밑도 끝도 없이 그를 따르는 그만의 '좀비'를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20세기 중반 시행되곤 했던 전두엽 절제술이 그가 생각한 좀비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었다. (소설의 시간 배경은 1980년대)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주택의 지하실에 '수술실'을 갖추고 노숙자나 여행객 같은 떠돌이들을 대상으로 이 수술을 시행한다. 그들은 그의 좀비가 되기도 전에 죽어 버린다. 영악하게도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무연고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으나 할머니 댁 옆집에 놀러온 금발머리의 훤칠한 소년을 보고 그만 반하고 만다. 몇날 며칠을 훔쳐보기만 하던 그는 마침내 완벽한 좀비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짠다.



진정한 좀비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명령과 변덕에 복종할 것이다. "네, 주인님" "알겠습니다, 주인님"하면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오직 주인님뿐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고 그런 존재일 것이다. 진정한 좀비는 '아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렇다'라는 말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두 눈을 맑게 뜨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것은 없고 그 뒤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심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과 다르다. 당신들은 나를 지켜보면서 (Q_ P_를 지켜보는 것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보고서를 쓰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당신들이 서로 Q_ P_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은밀한 생각을 하지?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심판을 내리지. (p. 75)



주인공의 이름은 쿠엔틴이지만 그의 이름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 불린다. '나'는 나를 지칭할 때 '쿠엔틴'이라고 하지 않고 'Q_ P_'라고 지칭한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물이 이름자 첫자만 쓰여 'R_ P_' 'T 씨' '닥터 E'로 불리며, 피해자들은 '이름없는 사람' '토끼 장갑' '덩치' '건포도 눈' '다람쥐' 등으로 지칭된다. 일단 자기 자신을 제삼자화하는 것은 정신분열의 증상으로 보인다. Q_ P_는 사회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나'는 Q_ P_가 하는 일을 관찰자처럼 동떨어진 입장에서 지켜본다. 다른 인물들의 이름을 간략히 부르는 것 또한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기보다 그저 하나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그는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을 건네고 있을 때면 종종 전혀 상관도 없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곤 한다. 다른 인물들과의 소통에 관심이 없고 감정이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등으로 정상적으로 호칭하고 그들에게 예의를 갖춰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이 귀찮거나 방해가 되면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이들의 물건을 하나씩 전리품삼아 지니고 다니며 그들에 가한 실험이 실패한 것을 아쉬워 한다.



난 교과서를 갖고 있고, 체포된 이후로는 머리를 어깨까지 풀어헤치거나 하나로 묶지 않고 잘랐다. 건포도 눈의 테두리가 휘어지는 펑키한 가죽 모자를 쓰고 있다. 300달러짜리 양가죽 재킷의 주머니에는 안에 보드라운 토끼털이 든 토끼 장갑의 가죽 장갑이 들어 있다. 그리고 처방을 받아서 만든 비행사 스타일의 황갈색 안경알을 덩치의 안경테에 끼워서 쓰고 있기 때문에 제법 쿨해 보일 것이다. 서른 살 안쪽의 턱이 갸름하고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한 수줍음 많은 백인으로 보일 것이다. 공대생들이 얼마나 친근하게 구는지, 얼마나 사람을 믿어주는지 이상할 정도다. 대학에 등록해서 그 학교 학생이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p. 114)



마이클 스톤의 저서 <범죄의 해부학>을 보면 저자는 선천적으로 악마적 기질을 지닌 인간이 존재함에 대해 부정하고 싶어하면서도 '악의 씨앗'이 없지는 않다고 적고 있다. 이 악마성의 발현이 선천적이지 않으면 후천적이라는 소리인데, '악의 씨앗'에 해당되는 범죄자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악한 길로 들어설 만한 환경적 영향이 도통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악마성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일고여덟 살 때부터 이미 발현된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쿠엔틴 또는 Q_ P_는 무척 유능하고 다소 억제하는 경향이 있는 아버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평범한 편이라 선천적인 '악의 씨앗'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면 책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머리를 다친 일이 있어 옳고 그름을 제대로 따질 수 없게 되었을지도.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묵직하게 두근거렸는데, 이게 그가 범인인 것을 들킬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피해자가 그에게 붙들릴 것이 걱정되어 그랬는지 모르겠다. Q_ P_는 피해자들이 피를 흘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성적으로 흥분하는 '미친놈'이다. 그런데 이 책은 Q_ P_가 '나'로서 자신에 대해, 사건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1인칭이어서 그가 느끼는 흥분과 설레임이 그의 것인지 내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사이코패스의 감성을 이해하는 또 다른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두렵기까지 했다. (사이코패스라면 지금껏 잘 버텼군!) 책을 덮고 며칠의 시간이 흐르자 괜찮아졌는데, 서평을 쓰려고 훑어보다 보니 다시 가슴이 묵직하게 두근거린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책은 이게 처음이었는데, 스스로를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책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쓰인 소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의도에 딱 들어맞는 소설이다. 사이코패스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의 일에 울고 웃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게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분명 읽고 나면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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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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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전. 과연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가? 정부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원전을 영덕이 아니라 서울 옆에 짓자. 그리고 국회의사당과 청와대를 원전 가까이, 그래, 인심 썼다. 3km는 좀 그렇고 한 5km 내에 짓자. 이왕이면 출퇴근도 빨리 하고 일도 열심히 하라고 그들의 집도 부근에 지어주면 좋겠다. 그러면 국민들도 자기네 동네에 원전을 짓는다 해도 선뜻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들이 몸소 나서서 원전의 깨끗하고 안전한 '반경' 안에서 생활하는데 국민들도 믿어주려 노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그 원전 옆에 집을 짓고 살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 보장 못할 안전과 눈에 보이지 않는 깨끗함에 자기들의 안위를 맡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위와 그들의 안위는 아예 그 가치가 다르다는 듯이. 국민은 그저 세금을 내주는 장기말일 뿐이고 자기들은, 글쎄, 장기를 두는 노인네 신쯤은 된다고 생각하는지 원.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을 일으킨 1986년도에는 방사능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보다 차라리 주술과 미신이 더 가깝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시골에 사는 노인들도 방사능에 대해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위험성만은 주워들은 바가 있다. 그럼에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 원전이 들어오는 걸 환영하기도 한다. 그저 그놈의 경제 발전 때문에 말이다. 그 땅이 발전은커녕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고도 영원히 인간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에는 눈을 감고 말이다.

 

만일 완벽한 인간으로 구성된 그룹이 있다면 난 자연재해를 차치하고라도 그들에게 원전을 맡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완벽하게 무해한 원전을 지을 것이고, 아무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고 원전을 운영할 것이다. 원전 주변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깨끗'할 것이고 주변 주민들도 아무도 아프지 않고 예정된 삶 그대로를 살 것이다. 그래, 그저 문제는 완벽한 인간이 없다는 것일뿐이다. 조그만 부품에서부터 온갖 비리가 연루되어 원전 구조물은 전혀 완벽하지 않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은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수칙도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무시하기 일쑤다. 때로는 돈 몇 푼 때문에, 또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 때문에 해야 할 일을 건너뛰기도 한다. 인간들 역사의 커다란 사건들은 이런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인간은 그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직접 겪은 이들의 인터뷰가 가득 실려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그저 깨끗하고 안전한 건물인 줄로만 알았던 원전이 하루 아침에 그들의 삶을 바꿔 버렸다. 삶이자 목표였던 그들의 땅은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다가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서운 모습을 하고 죽어가고 그들이 피난 간 땅의 주민들은 그들을 '체르노빌레츠'라 부르며 피해 다닌다. 간신히 새 생활에 적응해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예 낳을 수 없게 됐거나 낳을 수 있다 하더라도 탄생할 아이의 모습이 그들을 멈추게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터전에서 그저 삶을 살았을 뿐이었는데 체르노빌 사고 이후 다른 존재로 규정되고 배척되었다. 그들이 원해서 원전 가까이 살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의 모습이 변해갔다.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화상이 겉으로 드러났다. 화상을 입은 입안, 혀, 뺨에 처음에는 작은 물집이 생기더니 계속 커졌다. 하얀 필름 같은 점막이 몇 겹씩 벗겨졌다. 얼굴과 몸이 파란색, 빨간색, 회갈색으로 변해갔다. (중략) 하루 20번, 30번씩 대소변을 받았다. 피와 점액이 뒤섞여 나왔다. 손발의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물집으로 뒤덮였다. 남편이 머리를 움직이면 베개에 머리카락이 한 줌씩 떨어지곤 했다. (중략)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니 테이블 위에 오렌지가 있었다. 노란색이 아닌 분홍색의 커다란 오렌지였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나 먹으라고 누가 줬는데, 당신 먹어." 그런데 간호사가 커튼 밖에서 손을 저으며 안 된다고 했다. 남편 옆에 오랫동안 있던 음식은 먹기는커녕 만져서도 안 됐다. (중략) 아기를 나에게 보여줬다. 여자아이였다. "나타센카!" 내가 불렀다. "아빠가 너를 나타샤라고 이름 지었어." 겉으로는 손도, 발도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간 경화증에 걸린 아이였다. 간이 28뢴트겐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리고 선천성 심장병도……. 4시간 후, 딸이 죽었다고 했다. (p.36/42/48)

 

우리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숨길 수가 없었다. 아마 3~4년이 지나 하나, 둘 아프기 시작하고, 누군가 죽고, 미치고, 자살했을 때……. 그때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실은, 아마 20~30년 후에야 알게 될 거다. (중략) 집으로 돌아왔소. 그곳에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쓰레기통에 던졌소. 막내아들이 졸라서 군모를 줬소. 아들은 절대로 벗지 않고 매일 쓰고 다녔소. 2년 후 아들은 뇌종양 진단을 받았소. 나머지는 알아서 쓰시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소……. (p. 116/117)

 

첫 아이를 기다렸어요. 남편은 아들을, 나는 딸이 태어나기를 바랐어요. 의사가 나를 설득했어요. "임신 중절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남편께서 체르노빌에 오래 계셨어요." 운전기사인 남편은 사고가 난 직후 그곳으로 불려 갔어요. 모래와 콘크리트를 운반했거든요. 하지만 난 아무도 안 믿었어요. 믿기 싫었어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책에서 읽었어요. 죽음까지도……. 내 아이는 죽은 채로 태어났어요. 손가락도 두 개 모자랐어요. 여자아이였어요. 난 울었어요. 손가락이라도 다 있었더라면……. 여자아이잖아요. (p. 253)

 

 

사고 직후 처리를 위해 징집되거나 금전 보상으로 꾄 사람들은 원전 부근 마을이나 원자로 주변에서 일했다. 간혹 가다 납으로 만든 앞치마를 받는 사람도 있었으나 온몸을 가리기에도 역부족이었고, 찜통 같은 더위에 마스크는 숨을 쉬기가 어려워 그들은 아무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그것이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그 영웅적인 행동의 대가를 철저하게 치루기 시작했다. 국가에 의해 운 나쁘게 끌려간 이들의 사연은 더욱 안타깝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온한 삶이 부서질 듯한 고통과 신음으로 몸부림치다가 체르노빌로 인해 강제로 마감되어야 했다.

 

슬픈 일은 또 있다. 모두가 버린 땅에 무너지고 있는 소련 공산주의로 인한 내란을 피해 떠나온 사람들이 정착하는 것이다. 그들도 방사능의 무서움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같은 인간이 저지르는 전쟁의 공포가 더 잔악하고 더 살벌하여 차라리 방사능을 택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죽음의 땅에 살기 시작한 이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쳤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이들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그 땅에 사는 거라고 답한다. 몸이 아픈 것은 물론 무섭지만 그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방사능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보다 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다. 그들의 그 마음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그 어떤 질병보다도 사람이 사람을 더욱 가혹하게 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거기다 알고 보면 전쟁도, 체르노빌도 모두가 사람이 만든 재난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애완동물과 야생동물의 내장기관을 받았다. 우유를 검사했다. 단 한 차례의 검사로 우리한테 들어온 것이 고기가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목동들이 순서를 정해 구역에서 가축을 쳤다. 목동들이 오고 갔고, 젖 짜는 사람은 젖을 짤 때만 왔다. 낙농 공장은 계획대로 생산했다. 우리는 검사를 했다. 거기서 생산된 건 우유가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로가체프 낙농공장에서 생산한 분유와 연유, 농축유를 비교 방사선원으로 강의 때 활용했다. 그런데 그때 이미 똑같은 제품이 상점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모든 식품 진열장에 있었다. 용기 겉면 스티커에 생산지가 로가체프라고 적힌 걸 본 사람들이 구매하지 않아 재고가 많이 남았는데, 갑자기 스티커가 안 붙은 제품이 등장했다. 내 생각에는 종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속이기 위해서였다. 국가가 속였다. 어떤 정보든 '공황이 조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곱 개의 도장을 거치면서 기밀이 되어버렸다. (p. 276)

 

오염된 닭고기 가공에 대한 훈령이 있었다. 가공 공장 내부에서는 오염 지역에서 방사성 물질과 접촉할 때처럼 고무장갑과 고무 가운, 장화 등을 착용해야 했다. 일정 퀴리 이상이면 닭고기를 소금물에 끓인 후 물을 하수구에 버리고 고기만 만두나 소시지에 넣었다. 또 일정 퀴리 이상이면 뼈를 빻아 분말을 만들어 가축 먹이로 만들었다. 고기에 관련된 계획이 그렇게 시행됐다. 오염된 지역의 송아지를 다른 곳, 깨끗한 지역에서 값싸게 팔았다. 그런 송아지의 수송을 담당한 운전기사들이 말하기를, 송아지 털이 바닥까지 닿아 우스꽝스러웠고, 또 얼마나 굶주렸던지 걸레와 종이까지 닥치는 대로 먹었다고 한다. 밥 먹이기가 쉬웠다는 얘기다! 대부분 농장에 팔아넘겼지만 원한다면 개인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자기 집에 가져가 키운 것이다. 그건 범죄다! 형사 범죄다! (p. 353)

 

체르노빌의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RBMK)는 핵폭탄의 원료인 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이미 몇천 톤에 달하는 세슘, 요오드, 납, 지르코늄, 카드뮴, 베릴륨, 붕소와 알 수 없는 양의 플루토늄 등 450개 방사성 핵종이 우리 땅에 내려앉았다.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과 같은 폭탄을 350개나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물리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물리의 법칙을 논했어야 했다. 그런데 적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적을 찾고 있었다. (p. 360)

 

핵 전시 훈령에 따르면 핵사고, 핵 공격의 위협이 발생하면 바로 국민을 대상으로 요오드 치료법을 시행해야 한다. 위협이라고 했다. 여기는 이미 방사선 수치가 시간당 3천 퀴리였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권력을 걱정했다. 사람의 나라가 아닌 권력의 나라였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데엔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 생명의 귀중함은 온데간데없다. (p. 361)

 

 

도덕이나 윤리가 땅에 떨어진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주장이나 표어로는 국민을 위하고 일하며 국민을 위해 죽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독이 든 사탕발림일 뿐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구 소련은 이 일을 쉬쉬하고 숨겼으며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생명의 빛이 여기저기서 꺼져가는데 숨기는 데 급급했다. 소련은 '완벽한 국가'였고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야 했으니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후쿠시마 원전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일본 정부는 별 일이 아닌 것으로 축소하기 바빴다. 그러나 드러난 것은 체르노빌 사고보다 더 무서운 모습이었다. 위의 인용에서 소련은 오염된 식량도 마구잡이로 유통시킨다. 현재 일본 정부 역시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안전하다며 유통시키고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후쿠시마 산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는다며 WTO에 제소했다.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나라답다. 우리나라? 일본과 다르지 않다. 아직 원전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뿐이다. 원전 비리는 매일같이 터져나오고 있으며 원전의 자잘한 고장도 만만찮게 비일비재하다. 역사 왜곡?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다양성을 말살할 국정 교과서가 눈앞에 있으니 일본과 호형호제해도 되겠다.

 

저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끔찍한 일을 직접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3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는 '미래의 연대기'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과거의 실수가 미래의 실수를 방지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동시에 또다시 미래의 실수로 되풀이 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플래그잇을 얼마나 많이 붙였는지 모르겠다. 플래그잇 하나 하나마다 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새겨 놓았다. 중요한 것은 발전이나 남아도는 에너지가 아니라 인간 생명의 고귀함이란 것을 이 '깃발'에 새겨 펄럭이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들보다 가장 슬픈 일은 이 나라가 이러한 과거와 미래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부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우리나라 땅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 아니길 빈다.

 

 

공포심은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우리 자신에게 침투하지 못하게 막았다. 정말이다. 그렇다.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 인식 속에서 공포심은 평화적 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학교 교과서나 수많은 책에서 읽었던 평화적 핵……. 우리 머릿속에서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 같은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나 1초 만에 재로 변한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평화적 핵은 안전한 전구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우리는 세상을 아이처럼 보았다. 유치원생같이 세상을 살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체르노빌 후에 더 똑똑해졌다. 성숙했다. 나이를 더 먹었다. (p. 202)

 

당신들은 잊었다. 그때, 원자력 발전소는 미래였다. 그런 연설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선전했다. 한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했다. 조용하고, 장엄했다. 깨끗했다. 모퉁이에 붉은 기와 '사회주의 대회 우승자'라는 우승기가 있었다. 우리의 미래였다. 우리는 행복한 사회에서 살았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행복했다. 나는 자유로웠고, 누군가 내 자유를 자유롭지 않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역사가 우리를 지웠고, 우리는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지금 솔제니친을 읽고 있다. 나는 고민한다. (침묵한다) 내 손녀는 백혈병을 앓고 있다. 모든 것에 대해 값을 치렀다. 비싼 값을……. (p.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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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3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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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11월 11일에 개봉하는 영화 '007스펙터'에 맞춰 스파이 특집으로 꾸며졌다. '007 시리즈'의 팬은 아니지만 액션 영화는 어지간하면 재미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루고 있는 <미스테리아> 역시 흥미로웠다. 다만 영화 007 시리즈는 스파이물이란 생각은 들지 않고 액션물이란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게 문제이긴 하겠다. 스파이물이면 액션보다는 아무래도 고도의 심리전이 다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단은 스파이물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신전이니 친근한 느낌이 들긴 한다. 그런 고로 플랫폼을 넘나드는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머금은 <미스테리아>는 그렇지 않을 때의 <미스테리아>보다 더욱 내 흥미를 잡아끌었다.

스파이는 언제나 있어왔지만 양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건 과연 전쟁 중이거나 냉전 시대의 스파이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래도 평상시보다 그런 위기 상황일 때에 적국의 스파이 색출 활동이 자주 벌어질 것이고 목숨을 빼앗길 확률도 더 높다. 임무에 실패할 경우 주인공이 받아야 할 대가가 커지므로 독자의 카타르시스도 커지게 된다. 이때 목숨을 걸고 적국의 비밀 정보를 빼내오는 것으로 조국 수호에 몸 바치는 스파이는 또 하나의 히어로로서 취급된다. 그리고 우리는 험한 세상을 살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모두 스파이물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스파이물을 쓴 소설가들 중 많은 이들이 실제 스파이 활동을 한 바 있다는 점이 무척 놀라웠다. 특히 서머싯 몸이 러시아로 잠입해 스파이로 활동했다니 깜짝 놀랐다. <인생의 베일>을 통해 내게 서정적이면서도 슬픈 느낌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소설가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더니 멋진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이번 호에도 여러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있었다. 난 정말 실망한 책이었는데 평가가 후한 것 같다 당황했다. 그러나 다시금 읽어 보니 그저 책과 스티븐 킹에 대한 설명을 풀어 덧붙여 놓은 데 지나지 않아 안심했다(ㅋㅋ). 해당 서평의 저자도 이 작품에 대해 '고전적인 기법과 클리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지나칠 정도로)'라고 표현한 걸 보니 내 감상이 딱히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다. 내가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좋은 평가를 줬다면, 특히 그런 사람이 많다면 내가 제대로 읽었나, 너무 겉만 핥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곤 한다. 뭐, 남이 YES라고 할 때 나는 NO라고 할 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웹툰으로 유명한 '치즈 인 더 트랩'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어 놀랐다. 주변에서 해당 웹툰을 적극 추천한 일이 많지만 스토리가 길게 이어지는 웹툰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흔한 로맨스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로맨스릴러'란다. 이렇다 할 자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미스터리가 얽혀 있는 로맨스물인 모양이다. 해당 웹툰은 보지 않았지만 기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특히 웹툰이라는 다른 플랫폼에 대한 기사라 <미스테리아>가 다루고 있는 이야깃거리가 무척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던데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TV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 코너에서는 판사이자 작가인 도진기가 인터뷰이로 등장했다. 그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 기사로 흥미가 생겼다. 판사란 직업은 날마다 죄인이 될 사람과 죄인의 혐의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만나므로 죄가 나뉘는 갈림길의 극적 상황을 잘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 묘사는 더욱 탁월할 것 같다. 또한 언론으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범죄를 접할 테니 미스터리 작가로서는 좋은 바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필력이 따라야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책을 출간한 바 있는 중견 소설가이니 초반 작품이 별로였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더 나은 소설을 쓸 테고.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논픽션 코너는 이번에도 무척 흥미로웠다. 이번 사건은 아마도 윤일병 사건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의 사망이 처음 보고된 것처럼 기도 질식이 아닌 것으로 유추해내는 과정이 설명되고 있다. <미스테리아> 1호나 2호의 사건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건이어서 그저 흥미롭기만 했으나, 이번 사건은 그 악마들의 소행을 다 받아내야 했을 청년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마음이 무척 아팠다. 많은 주검을 보며 가슴 속에 통증을 느꼈을 저자의 마음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 코너는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책 속의 가상 현실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접하는 사건들이라 더욱 와 닿아 마음에 드는 코너이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곽재식의 단편이 실렸다. 힌트들이 너무 직선적으로 나열되어 있어 스파이물이라고 보기엔 약한 느낌이다. 따라서 재미가 덜하다. 지난 호의 '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가 백주대낮에 갑자기 사라진 사람과, 범인이 아님에도 범인이 자신이라고 우기는 이들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승부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열심히 돌아가던 공장들이 해방 후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배분되었는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미스테리아>를 구입할 생각이긴 했지만,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이 실려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 꼭 구입해야 했다. 이번 <미스테리아>의 마지막, 단편집의 마지막은 바로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 <모델>이다. 조깅을 즐기는 소녀에게 그림 모델을 해 달라는 돈 많고 무척 예의바른 중년의 남자. 이들의 관계는 도대체 사건이 어떤 식으로 흘러들어갈지 마지막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착하고 총명한 소녀와 레이디 퍼스트를 외칠 듯 예의범절을 중시하며 소녀의 기억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는 남자의 대화나 만남의 느낌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무척 청명한 느낌이 들고 마치 환상소설 같기도 하다. 소녀는 남자에게 그가 원하는 자신의 기억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점차 진실의 기억에 다가간다. 남자의 정체는 좀 진부했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가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역시나 호기심 가는 책이 많아졌다. <목요일이었던 남자>, <조용한 미국인>, <자칼의 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노우맨(!)>, <상복의 랑데부>, <이니미니>,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보이지 않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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