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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3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평점 :
이번 호는 11월 11일에 개봉하는 영화 '007스펙터'에 맞춰 스파이 특집으로 꾸며졌다. '007 시리즈'의 팬은 아니지만 액션 영화는 어지간하면 재미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루고 있는 <미스테리아> 역시 흥미로웠다. 다만 영화 007 시리즈는 스파이물이란 생각은 들지 않고 액션물이란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게 문제이긴 하겠다. 스파이물이면 액션보다는 아무래도 고도의 심리전이 다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단은 스파이물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신전이니 친근한 느낌이 들긴 한다. 그런 고로 플랫폼을 넘나드는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머금은 <미스테리아>는 그렇지 않을 때의 <미스테리아>보다 더욱 내 흥미를 잡아끌었다.
스파이는 언제나 있어왔지만 양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건 과연 전쟁 중이거나 냉전 시대의 스파이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래도 평상시보다 그런 위기 상황일 때에 적국의 스파이 색출 활동이 자주 벌어질 것이고 목숨을 빼앗길 확률도 더 높다. 임무에 실패할 경우 주인공이 받아야 할 대가가 커지므로 독자의 카타르시스도 커지게 된다. 이때 목숨을 걸고 적국의 비밀 정보를 빼내오는 것으로 조국 수호에 몸 바치는 스파이는 또 하나의 히어로로서 취급된다. 그리고 우리는 험한 세상을 살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모두 스파이물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스파이물을 쓴 소설가들 중 많은 이들이 실제 스파이 활동을 한 바 있다는 점이 무척 놀라웠다. 특히 서머싯 몸이 러시아로 잠입해 스파이로 활동했다니 깜짝 놀랐다. <인생의 베일>을 통해 내게 서정적이면서도 슬픈 느낌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소설가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더니 멋진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이번 호에도 여러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있었다. 난 정말 실망한 책이었는데 평가가 후한 것 같다 당황했다. 그러나 다시금 읽어 보니 그저 책과 스티븐 킹에 대한 설명을 풀어 덧붙여 놓은 데 지나지 않아 안심했다(ㅋㅋ). 해당 서평의 저자도 이 작품에 대해 '고전적인 기법과 클리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지나칠 정도로)'라고 표현한 걸 보니 내 감상이 딱히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다. 내가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좋은 평가를 줬다면, 특히 그런 사람이 많다면 내가 제대로 읽었나, 너무 겉만 핥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곤 한다. 뭐, 남이 YES라고 할 때 나는 NO라고 할 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웹툰으로 유명한 '치즈 인 더 트랩'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어 놀랐다. 주변에서 해당 웹툰을 적극 추천한 일이 많지만 스토리가 길게 이어지는 웹툰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흔한 로맨스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로맨스릴러'란다. 이렇다 할 자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미스터리가 얽혀 있는 로맨스물인 모양이다. 해당 웹툰은 보지 않았지만 기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특히 웹툰이라는 다른 플랫폼에 대한 기사라 <미스테리아>가 다루고 있는 이야깃거리가 무척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던데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TV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 코너에서는 판사이자 작가인 도진기가 인터뷰이로 등장했다. 그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 기사로 흥미가 생겼다. 판사란 직업은 날마다 죄인이 될 사람과 죄인의 혐의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만나므로 죄가 나뉘는 갈림길의 극적 상황을 잘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 묘사는 더욱 탁월할 것 같다. 또한 언론으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범죄를 접할 테니 미스터리 작가로서는 좋은 바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필력이 따라야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책을 출간한 바 있는 중견 소설가이니 초반 작품이 별로였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더 나은 소설을 쓸 테고.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논픽션 코너는 이번에도 무척 흥미로웠다. 이번 사건은 아마도 윤일병 사건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의 사망이 처음 보고된 것처럼 기도 질식이 아닌 것으로 유추해내는 과정이 설명되고 있다. <미스테리아> 1호나 2호의 사건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건이어서 그저 흥미롭기만 했으나, 이번 사건은 그 악마들의 소행을 다 받아내야 했을 청년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마음이 무척 아팠다. 많은 주검을 보며 가슴 속에 통증을 느꼈을 저자의 마음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 코너는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책 속의 가상 현실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접하는 사건들이라 더욱 와 닿아 마음에 드는 코너이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곽재식의 단편이 실렸다. 힌트들이 너무 직선적으로 나열되어 있어 스파이물이라고 보기엔 약한 느낌이다. 따라서 재미가 덜하다. 지난 호의 '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가 백주대낮에 갑자기 사라진 사람과, 범인이 아님에도 범인이 자신이라고 우기는 이들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승부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열심히 돌아가던 공장들이 해방 후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배분되었는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미스테리아>를 구입할 생각이긴 했지만,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이 실려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 꼭 구입해야 했다. 이번 <미스테리아>의 마지막, 단편집의 마지막은 바로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 <모델>이다. 조깅을 즐기는 소녀에게 그림 모델을 해 달라는 돈 많고 무척 예의바른 중년의 남자. 이들의 관계는 도대체 사건이 어떤 식으로 흘러들어갈지 마지막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착하고 총명한 소녀와 레이디 퍼스트를 외칠 듯 예의범절을 중시하며 소녀의 기억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는 남자의 대화나 만남의 느낌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무척 청명한 느낌이 들고 마치 환상소설 같기도 하다. 소녀는 남자에게 그가 원하는 자신의 기억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점차 진실의 기억에 다가간다. 남자의 정체는 좀 진부했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가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역시나 호기심 가는 책이 많아졌다. <목요일이었던 남자>, <조용한 미국인>, <자칼의 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노우맨(!)>, <상복의 랑데부>, <이니미니>,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보이지 않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