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벨문학상 작품은 늘 읽을 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처럼 '반드시' 읽어야 할 가치를 지닌 작품은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의 '작가생활'이라는 데에 꽂혀서 사 버렸다. 만일 '마스다 미리의 만화 그리는 법'이라고 했어도 냉큼 구입했을 것 같다. 일단 작가에 관련된 건 작법도 그렇고 이것저것 많이도 궁금하다. 마치 작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하면 그것만으로 작가가 될 수 있을 줄 아는 모양이다;;


표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스다 미리의 그림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림체를 중시하는 사람이면 코웃음치고 손도 안 댈 듯하다. 콘티만 짜면 나도 10분만에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단순한 그림체가 너무 가벼워 보여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면도 있지만, 그건 또 나름대로 내게는 좋은 점으로 다가온다. 그 부족해 보이는 면이 오히려 나에게는 너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기분이다. 그리고 아무리 만화책이라 해도 정말 중요한 건 그림이 아니라 그 안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해 준다. 문화의 모든 장르는 바로 이 이야기, 스토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화려한 그림체가 포장지라면 내용은 포장지 안의 내용물이겠지.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바로 그 단순한 그림이 품고 있는 자잘하고 사소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깊은 생각에 포인트가 있다.


마스다 미리는 학교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고, 직장에서는 너무 소심해서 자신의 의견조차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면 참 한심해 보이는데, 역시 한심하지만 나랑 비슷하다. 너무 조용해서 있는듯 없는듯 했던 공부 못하던 학생. 간밤의 TV 프로 이야기와 연예인 이야기를 하면서 마구 웃고 떠드는 급우들을 보면서 그 얘기들이 왜 재미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나. 어떤 이야기로 애들을 웃게 만들어야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던 나. 신변의 일들만으로도 벅차서 하루하루 침울했던 날들. 집안 분위기는 마스다 미리네와는 전혀 달라서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귀에 못이 되어 박힐 정도로 지겨웠고, 부모님은 칭찬에 매우 인색했다. 이래저래 다 적고 보니 마스다 미리보다 더 비루하구나. 어쨌든 그래서 마스다 미리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처녀로 자라났고 나는 그런 근자감도 없는 사람으로 자라난 건가-_-;;; 어쩐지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성격이 조금 밝아지긴 했지만.


공부도 못했고 소심했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모든 길이 공부를 통해서만 있지는 않다. 그리고 성공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행복. 마스다 미리 그녀의 행복은 날마다 발견하는 작은 것들에 있다. 가끔 만나는 이런저런 편집자들의 성격, 안쪽 의자를 비워놓느냐 자기가 앉느냐, 통하는 편집자를 만났을 때의 사소한 기쁨. 다행히 나 역시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곧잘 발견하고 이런저런 것들에 궁금증을 품곤 하는 사람이라 마스다 미리의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반가웠다. 또, 호기심에 낯선 모임을 신청했다가 그날이 다가오면 후회하고, 막상 그날이 되면 그래도 가야지 싶어서 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 가길 잘했어. 좋은 경험이었어' 하면서 즐거워한다. 뭔가 그렇게 낯선 것에 다가갔다가 돌아올 때면 무미건조한 그 하루에 어떤 특정한 색깔을 칠하는 기분이다. 낯선 사물, 낯선 냄새, 낯선 촉각, 낯선 맛. 새로운 기억.


하지만 그녀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을 찾았다. 자기 자신을 투영해낼 수 있는 그림과 글. 단순한 그림과 짤막한 말 몇 마디로 많은 것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그녀를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살까 말까 고민했던 만화책 한 권에 격려받는 기분이었다. 음~~ 계속 앞에 두고 틈날 때마다 들춰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외따로이 떨어진 섬에 사는 열다섯 소녀 헤티는 바다유리(유리조각 등이 20~30년간 바다를 떠돌며 매끈한 보석 형태로 된 것)를 통해 낯선 그림자를 본다. 그 무렵 섬에는 무서운 폭풍우가 몰아치고 그들을 다른 섬이나 육지와 이어주는 배가 부서진다. 폭풍 속에서 나타난 작은 배에는 은빛 머리칼의 노파가 타고 있었다. 헤티는 노파가 바다유리 속에 등장한 인물인 것을 알아보고 한편으로는 자기를 찾기 위해 노파가 섬에 오게 됐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섬마을 노인들은 노파가 섬에 악을 끌고 왔다며 노파를 내치려 한다. 이에 헤티가 반발하다가 섬노인 하나가 죽게 되고, 머잖아 또 다른 노인이 목숨을 잃는다. 헤티의 할머니와 헤티의 친구 탐, 그리고 몇몇 어른들은 노파와 헤티를 보호하고, 그들의 보호 속에서 헤티는 죽어가는 노파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노파에 대한 단서는 배의 부서진 명판으로서 노파가 육지에 있는 큰 도시에서 왔음을 알려준다. 헤티는 노파를 데리고 돛단배에 올라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며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젓는다.


바다유리라는 신비로운 영적 매개체와 그 안에서 어떤 형상을 보는 신비로운 소녀. 그리고 속삭임을 들려주는 기묘한 바다, 모라 섬이라는 낯선 장소, 거기에 나타난 신비로운 노파. 이야기 전체에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감돌아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상당히 기대했다. 그러나 노파가 탄 배가 섬에 도착하는 데만 전체 페이지의 1/3이, 또 헤티가 노파를 간호하는 데만 1/3이 소요되면서 이야기가 너무 늘어져 어떤 결말이 날지 도무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결말이 너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이야기는 맥이 빠지는 법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의 결말을 생각하고 글을 썼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때도 맥이 빠지긴 마찬가지이다. 오로지 신비로운 배경과 신비로운 인물들을 갖다 배치하는 데만 바빠 그들이 겪는 사건 자체에는 신경을 안 쓴 모양새다.


노파는 그 큰 도시에서 치매 따위에 걸려 죽은 자기 딸을 찾아 혼자 배를 타고 헤티가 사는 섬까지 왔다. 헤티는 노파를 자기의 돛단배로 그 노파의 집으로 데려다 준다. 도시에 간 헤티는 다시 섬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러한 공간의 이동은 청소년 성장 소설의 전형이다. 익숙하던 탄생의 공간에서 낯선 곳으로의 이동은 엄마 품을 떠나 둥지 밖을 나서는 것으로서 하나의 성장을 가리킨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의 이동이 이뤄지는 가운데에서 헤티의 내면이 성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파도에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배를 붙들고 돛을 챙기는 외면의 모습만이 전부이다. 아니면 할머니들에게 걱정을 끼치면서 지극 정성으로 낯선 노파를 돌보는 것이 성장인가? 할머니가 갖다줘도 안 먹던 밥을 알아서 챙겨먹고 노파에게도 챙겨주는 게 성장인가? 도시에서 만나게 되는 헤티가 싫어했던 노인과 이름이 같은 소년 퍼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성장인가? 단순히 공간이 바뀌었다고 성장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저자가 노렸던 것은 <리버 보이>에 이은 또 다른 성장 소설이었을 것 같지만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노파가 나타나기 전부터 헤티는 섬노인들과 사이가 무척 좋지 않다. 사건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힌트도 없고 그저 무턱대고 서로를 싫어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헤티를 가장 싫어하는 퍼 노인은 얼토당토 없이 섬에 악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리를 지껄인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마을의 권력을 틀어쥐고자 한다. 바다유리를 통해 본 형상을 이야기하는 헤티에게 미신을 믿는다며 욕을 하지만 그가 악이 몰려온다고 하는 소리도 미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기성세대의 꼰대 같은 인물로 헤티가 싫어하는 이유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퍼 노인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앞에 두고 바위 위에 서 있던 노파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 노파가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게 만든다. 분명 천벌을 받을 인간이지만 헤티가 밀어 넘어뜨리는 바람에 그만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헤티는 그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고, 그의 오른팔 격이었던 노인이 죽은 뒤에 치러진 또 다른 장례식에도 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그가 나 때문에 죽었다면 일반인은 뉘우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헤티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노파에 대한 걱정뿐이다.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바다유리를 통해 미리 알게 된 인물에 대한 애착은 있을 수 있지만, 노파의 간호에 비상식적으로 집착하는 것 역시 열다섯 살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일 결말에서 헤티가 노파에게 집착하게 된 합당한 이유가 있었으면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치매 노인의 죽은 딸에 대한 집착, 그 딸과 닮은 외모의 소녀, 그들 사이의 알 수 없는 인연(?)이라는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결말은 초반부에 그렇게도 공들여 쌓아놓은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책을 끝까지 다 읽었는데도 도대체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알 수가 없다.


293페이지 셋째 줄에 오타. '침치묵' -> '침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ow Write 장르 글쓰기 1 : SF 판타지 공포 Now Write 장르 글쓰기 1
낸시 크레스 외 지음, 로리 램슨 엮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작가와 편집자들(작가가 아닌 듯한 인물의 글이 몇 있었다)이 네댓 페이지, 짧게는 두세 페이지에 걸쳐 초보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글쓰기 책들은 대부분 한두 명의 저자가 챕터 주제에 맞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곤 한다. 이야기가 늘어지다 보니 저자 자신의 경험 이야기가 잘 녹아든 글쓰기 책은 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반면 오로지 글쓰기 기술만 늘어놓은 책은 재미가 없다. (아무리 글쓰기 기술에 대한 책이라지만 내용에서는 재밌는 책을 쓰라고 야단이면서 정작 자기는 재미없게 쓰다니! 글쓰기 책도 재미가 필요하다. 재밌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과목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 책은 저자마다 할당된 페이지가 얼마 되지 않아 저자가 경험을 늘어놓을 여유가 거의 없다. 따라서 글쓰기 기술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한데 이게 또, 쓴 사람이 무려 예순세 명이나 되다 보니 읽는 재미가 있다. 이 많은 저자들이 한 꼭지씩 집필하여 비슷한 주제 별로 모아 챕터에 따라 나뉘어 있다. 사람이 많으면 이야기도 많이 겹칠 만 하건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들이 글을 보다 잘 쓰기 위해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연습 과제를 내주어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에게 친근감이 들고 글쓰기 연습에 있어서는 무척 도움이 되고 있다.

 

다음 2권은 '로맨스' 장르인데, 내가 싫어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1권을 무척 재밌게 읽을 터라 2권에서는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줄는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킹제이 헝거 게임 시리즈 3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게임은 끝났으나 아무도 안전하지 않았다. 캐피톨을 제외한 구역 전체에서 캐피톨에 대항한 반란이 일어난다. 캣니스는 사라진 줄 알았으나 건재했던 13구역에 머물며 반란군의 상징이자 구심점인 모킹제이(흉내어치)로서 홍보팀에서 활약한다. 반란군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짤막한 동영상을 촬영하고, 때로는 반란이 일어나는 지역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의지와는 달리 점점 더 반란의 구심점인 모킹제이가 된다. 지난번 게임에서 그녀가 그토록 살리려고 애썼던 피타는 게임장의 역장이 무너지며 캐피톨에 잡혀 간다. 그리고 그가 캣니스와 반란군을 설득하는 듯한 동영상이 TV에서 흘러나온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하며 아파보이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반란군은 흔들리는 캣니스를 위해 피타를 구해오는데, 돌아온 피타는 정신에 타격을 입어 캣니스의 목숨을 노리는 상태가 되어 있다. 피타를 기다리던 캣니스는 너무나 달라진 그의 모습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그를 보지 못할 곳에서 활동하려 한다. 그러나 피타는 그녀와 함께 일명 '스타 분대'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된다. 스타 분대는 보다 긴박감 넘치는 동영상 제작을 위해 함정이 설치된 지역에 진입한다. 쉬운 미션이었으나 그들의 잠입을 눈치챈 캐피톨의 반격은 대원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캣니스는 스노우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살아남은 분대원을 이끌고 캐피톨로 잠입하지만 때를 맞춰 함께 들어온 반란군이 캐피톨을 장악한다.


<헝거 게임>은 정말이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잔악한 볼거리의 하나일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 죄 지은 자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자기들끼리, 또는 맹수와 싸우게 한 것도 무시무시한데 헝거 게임은 죄 없는 자들, 아니, 가난하다는 것이 죄가 된 아이들이 그 대상이 된다. 게다가 더욱 무서운 것은 이들의 가난이 그들 자신에게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의 압정과 수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캐피톨은 그런 가난이 마치 그들 구역민들의 문제인 양 취급한다. 그리고 굶는 일이 허다한 고통스런 삶이 너무나 당연한 자기들의 지배에 대한 반발의 벌이라고 여긴다. 인간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누려야 할 자유를 빼앗은 대가가 생명을 위협할 수준의 굶주림과 가난이라니. 그리고 그들의 복종을 위해 그들의 아이들을 서로 죽이는 전장에 내보내다니. 이보다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결국 판엠에서의 반란의 발발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독재로 인한 내전이 한창인 데다 괴물 같은 단체 IS가 장악한 시리아, 또는 부자세습이 이어지는 독재가 이뤄지며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 북한에 태어났다면 <헝거 게임> 시리즈는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이 아직까지 독재를 이어오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다. 처음부터 패악을 떨려고 마음 먹는 인물은 없다. 누구나 처음엔 좋은 인물이길 자처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은 변하기 일쑤이고 권력을 손아귀에 틀어쥔 독재자는 그러한 위험성을 가장 심각하게 내포한다. 따라서 독재가 더 길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저당잡히고 굶주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판엠의 주민들이 힘을 모아 일어났듯이 우리나라의 국민들도 일어났고 세 독재자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독재자들로 인해 어긋난 각도로 지속되어 온 경제발전은 현 시대의 국민을 다시금 수렁으로 내몰고 있다. 극심한 경제적 빈곤과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OECD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또 다른 헝거 게임을 벌이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미미했던 각도의 오류 수치는 시간이 흐르자 엄청난 것이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시점이다. <헝거 게임> 시리즈는 이렇게 반복되어 온 압제와 반발의 역사를 가상의 국가 판엠에 비춰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전복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헝거 게임> 시리즈 자체는 안타깝게도 긴박감이 넘치지도 않고 서사시 같은 웅장한 맛도 없다. 그저 어쩌다 시대의 흐름에 휘말려 버린 신경질적인 여자애가 하나 있을 뿐이다. 모킹제이라는 혁명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저 타이틀만 달고 있을 뿐인 느낌이다. 전장의 한가운데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뒤에서 무슨 대단한 활약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나 부족한 인물로 보인다. 작가가 혁명의 상징이 되는 인물과 그 활약을 제대로 꾸며낼 만한 역량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독재와 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인물인데도 나로선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수박 겉만 핥는 느낌만 들 뿐이다. 그야말로 실한 알맹이 따위는 없는 TV쇼 그 자체랄까?


캣니스가 <헝거 게임>에서 활을 이용해 활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군 최고의 명사수라고 소리를 지르는 데에선(P. 251) 기가 찼다. 반군이 얼마나 오합지졸이면 생계를 위해 활을 들고 다니던 여자애가 최고의 명사수가 될 수 있는지, 그런 오합지졸로 온갖 최첨단 무기를 보유한 캐피톨을 어떻게 전복시켰는지 의문스러웠다. 마치 반란을 부추길 구실이라도 주는 것처럼 자기들이 물건을 헌납받던 구역들을 무턱대고 그냥 짓밟아 버리던 캐피톨의 행태도 어이가 없었고,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 캐피톨이 오합지졸 무리에 무너진 것도 어이가 없었다. 해괴하게도 장미와 피 냄새를 풍기고 다니던 스노우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항거하던 국민들의 기세에 눌려 알아서 하야한 것도 아닌데. <헝거 게임>에 두 번 나가본 게 전부인 여자애가 적진 한복판에 있는 대통령을 암살하러 가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적진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나 죽어버린 동생의 등장도 황당했다.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으나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나 아쉬운 책이다. '비밀독서단'에 탄력받아 성급하게 산 게 후회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