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글쓰기 - 읽히는 이야기와 쓰는 삶에 대하여
이영관 외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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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매년 여름방학 숙제로 시화(詩畵)를 내 줬다. 첫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엄마는 시화 숙제를 했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너무나 솔직하게도 아직 안 했다고 답했다. 엄마는 빨리 하라고 재촉하셨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시 한 편을 썼다. 그림도 어떻게 그려야겠다고 구상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시가 너무 어둡다며 다시 쓰라고 하셨다. 끝내 엄마의 개입이 잔뜩 들어간 시가 완성됐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감성과 동떨어진 그 시는 나의 시라고 할 수 없었다. 점수도 A, B, C 중 B를 받았다. 분했다.

엄마한테는 쓰라는 대로 쓴 시를 보여 드리고 실제로는 내가 쓴 시를 제출하면 됐을 텐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대신 다시는 엄마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시화 숙제를 미리 해야겠다고,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시를 써 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반년도 지나지 않아 구 보건소가 연 작은 시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이후로 엄마는 시화 숙제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두 해 여름방학에 낸 시화 두 편은 모두 A를 받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시를 쓰다가 대학교 2학년 가을에 시 쓰기를 그만뒀다. 사실 나는 시를 거의 읽지 않았다. 그저 시를 쓰는 행위 자체가 재밌어서 계속 썼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 시보다는 다른 글을 쓰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어졌다.

지금 제일 많이 쓰는 글은 서평이다. 시기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긴 하지만, 시를 포기하고 서평을 택한 건 아니었다. 시와 다르게 서평 쓰기는 생존 전략이었다. 서평단 활동을 하면 책값도 아낄 수 있었고, 취업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한 푼이 아쉬운 국문학과 학생에게 서평 쓰기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취업도 했지만 여전히 서평을 쓴다. 서평을 쓰는 게 재밌기만 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쓴다. 나를 위해서. 책을 읽고 바로 덮어 버리면 내용이 금방 휘발되고 내 것으로 흡수되지 않는다. 글을 쓰려면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하므로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생각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글을 쓰는 이유와 글의 장르가 어떻든지 간에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글쓰기를 이어 올 수 있었다.

『친애하는 나의 글쓰기』는 작가 열여덟 명의 글 쓰는 마음을 크게 “다가가고 싶은 ‘진심’, 들려주고 싶은 ‘결심’, 꾸준한 ‘의지’, 버틸 수 있다는 ‘믿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카테고리마다 네다섯 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소설가와 시인, 에세이스트뿐만 아니라 만화가, 수학자, 수녀 등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서로 다른 글을 쓰는 열여덟 명이 각자의 고유한 글쓰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심과 결심과 의지와 믿음. 어느 하나도 글쓰기에 필요치 않은 건 없는 듯하다. 글을 쓰고 발표하는 일은 사회적 행위로 나와 타인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용기도 필요하다. 또한 계속 쓰겠다는 의지와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글쓰기를 지속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열여덟 가지의 이야기 중 어느 하나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었다. 김금숙 작가님처럼 나도 역사와 개인의 이야기를, 김초엽 작가님처럼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 글을 잘 쓰고 싶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처럼 아주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쓰고 싶다. 임경선 작가님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 나가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장르는 몇 차례 변했다. 그렇지만 쓰고자 하는 이유와 실행력만 있다면 언제까지든지 쓸 것이다. 평생 글을 쓰고 싶다. 아주 끈질기게 쓰고 싶다.

굉장히 흔한 유혹 중 하나가 자기 마음에 드는 통계는 금방 받아들이고 마음에 안 드는 통계는 비판적으로 보는 겁니다. 하지만 통계의 질도 여러 가지라 부정확할 수 있어요. 찾아보면 반대의 통계도 많고요. 그러나 대부분 자기 마음과 잘 맞는 것은 스스로 추궁하지 않죠. 그건 ‘고장 난 기계’가 되는 길입니다. - P31

오늘은 ‘주차장’에 대해 생각해볼까? 하는 식으로 오늘 하루를 설명하는 단어를 고민하면서 생활 속에서 하나를 건지는 편이에요. 어린이와 관련해 글을 정리하고 세분화하다 보니 ‘오늘의 낱말’과 어린이를 연결하는 식으로 글의 소재를 찾기도 합니다. 원고를 쓸 때 ‘어린이와 커피’, ‘어린이와 얼음’ 같은 식으로 고민하다 보면 평소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어린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제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데 그런 대화도 글감을 얻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 P44

제 작품을 비롯해 SF는 미래를 불확정적이고 표류하는 것처럼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에도 거기엔 낙관이 필요합니다. 무조건적 낙관이 아닌,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죠. - P51

논문을 보면 행복하지 않은 문화권이나 사회에 몇 가지 특성이 있어요. 안타깝게도 한국은 그런 점에서 거의 상위권에 자리해요. 과도하게 강한 집단주의적 생각과 수직적인 문화가 그렇죠.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서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고 에너지를 투여하면 타인을 배려할 에너지가 남지 않아요. 수많은 사회 구성원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회에서는 일상에서 예의 없고 불쾌한 일이 수시로 벌어집니다. 이런 경험을 계속해서 참아내야 하는 사회는 행복감이 높을 수 없어요. - P65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처럼 시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이들에게 슬픔과 같은 감정을 선물한다. 고통을 모르는 이에게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슬픔을 모르는 이에게 슬픔을 느끼게 해준다. 남이 울면 따라 울 수 있는 것, 슬퍼할 줄 아는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 - P101

저는 늘 글로 웃기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 글을 읽고 사람들이 킥킥대는 순간을 기다리며 썼던 것 같아요. 글로 웃기는 건 어렵지만…… 좋잖아요, 웃으면. 재미있는 건 소중하니까요. 기쁨과 슬픔이란 어우러져 있어요. 저만 해도 살아갈수록 슬픔 속의 유머, 유머 속의 슬픔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 P134

제가 쓴 소설에 문법이 맞지 않는 게 많았나 봐요. 디테일 부분까지 댓글로 잡아주셨어요. 그때 경험을 통해 ‘피드백을 쉽게 해도 부담 없는 작가가 돼야 한다’고 배웠어요. 글 쓸 때 고집은 필요하지만, 피드백이 안 들어오면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모르잖아요. 혼자 쓸 때 원석이라면, 남들이 깎아줄 때 보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P171

‘힐링 도서’의 원조 저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말하는 건데, 저는 그 ‘힐링, 힐링’하는 말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사소한 일까지 ‘상처’라고 말하면 삶이 문제 덩어리가 돼버려요. 일상이라는 게 갈등도 있고, 기분 나쁜 일도 있고,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죠. 모든 걸 정신병리로 만들면 안 됩니다. 모든 일에 ‘증후군’을 갖다 붙이면 일상이 치료받아야 할 일이 돼버려요. 스스로 극복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도와줘야 하는 일이 되는 거죠. - P177

처음에는 업계도 의식하고 독자도 의식했지만, 이제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이 남아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나’ 그것만 바라보게 됐어요. 그 외의 것은 소음이에요.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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