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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 팔도 최고의 족집게 선생부터 기상천외한 커닝 수법까지, 처음 읽는 조선의 입시 전쟁
이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고등학교 삼 학년이 되기 직전의 겨울 방학이었다. 학교 자습실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갖다 놓았다가 선생님께 한 소리를 들었다. 이런 책 말고 전공 도서를 읽으라고 말이다. ‘이런 책’은 다름 아닌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도 안 하고 맨날 ‘이런 책’이나 읽었던 것도 아니다.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하는 학생 치고는 독서 기록이 적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정작 문학을 공부할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독서 대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매일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서 십 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에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일의 즐거움과 행복을 빼앗겼다.
외부에서 주입된 욕망은 개개인의 고유성이 발현되지 못하게 한다. 그런 걸 사회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폭력을 적극적으로 정당화하고 답습하는 데 일조한다. 그런 상황을 방조하다 보면 폭력을 폭력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회가 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과도한 교육열에 시달려 왔다. 따뜻한 정도를 한참 넘어서 과열되어 터질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통해 그 열기의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된 것임을 보여준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고고하게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선비 대신 요약본을 손에 쥔 양반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과외와 부모의 자식 체벌(가정 폭력)도 만연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입시 비리를 저지르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학자들도 자식(딸이 아닌 아들)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과 너무 닮았다. 청소년 대부분이 대입에 자신을 갈아 넣는다. 그 과정에서 하는 공부는 오로지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로, 실속이 없다. 마음의 양식이 되지도 못할뿐더러 실용적이지도 않다.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바는 있지만 입시라는 목적하에 현장에서는 무시되기 일쑤다. 모두가 그렇게 쓸모도 없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대입 결과는 부모의 경제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고위층 자녀들은 특혜를 안 받은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저자는 과거 제도가 무너짐에 따라 조선 사회도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과거야말로 조선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였으니 말이다. 개인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세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역사를 교훈 삼아 지금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조선 시대라고 해서 모두 출중한 문해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물론 텔레비전도 없었고, 컴퓨터도 없었고, 스마트폰은 더더군다나 없었지만, 그래도 놀려고 마음먹으면 할 게 참으로 많았다. 조선 사람들은 사냥을 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며 놀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실한 독자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 P54
아무래도 정조는 누워서 책을 읽는 신하를 적발했던 것 같다. 훗날 그의 사돈이 되는 김조순金祖淳은 숙직하며 동료 관리들과 연애 소설을 읽다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이런 책을 점잖게 앉아서 읽었을 리는 없으니, 그렇다면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도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뭐, 책만 읽으면 되지 자세까지 따지나 싶지만, 그만큼 정조는 ‘꼰대’였던 것이다. - P59
윤기는 조급한 부모들을 일컬어 ‘알묘揠苗’라고 했는데, 싹을 뽑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가 예로 든 알묘들의 모습은 어쩐지 매우 익숙하다. 그들은 어제 가르쳐준 하나를 왜 기억하지 못하냐고 화내고, 오늘 왜 열을 깨우치지 못하냐고 화낸다. 평범한 아이에게 천재 수준의 총명함을 기대하며 또 화낸다. 그러다가 화를 못 참고 결국 매를 든다. 이래서야 무슨 성취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런 부모 밑의 아이는 오히려 공부를 멀리하게 된다. - P136
만약 사도세자와 정조의 태어나는 순서가 바뀌었다면, 역사가 좀 달라졌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설사 정조가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들, 영조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채근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영조의 됨됨이었다. 무언가에 쫓기듯 자식을 괴롭히는 사람. - P147
인간의 삶이란 수백 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일까. 과거(입시)가 나라를 망친다! 젊은이들의 전부 과거(입시)에 목매느라 제대로 기를 못 펴고 있다! 수백 년 전의 말이라기에는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찌른다. - P152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 잘되기를 마다하는 부모는 없다. 그리고 조선에서 잘되는 길이란 결국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하여 당시 사람들은 과거제도의 폐단을 지적하면서도, 거기에 무수한 시간과 돈, 노력을 쏟는 이중적이고도 모순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사회적인 자아와 개인적인 자아가 다르고, 이상과 현실이 끊임없이 괴리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 P159
빈부가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500년 전에도 돈이 없으면 오직 혼자만의 노력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아니, 선생이 있든 없든 온전히 공부만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공부할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 P205
숙종 때는 꼭 과옥이 아니더라도 당쟁이 너무나 치열했다. 자고 일어나면 특정 세력이 통째로 몰락하거나,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실력자가 사약을 마셨다. 이처럼 혼란하고 불안한 시기였기에 생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고, 따라서 입시 비리를 거침없이 저질렀던 듯싶다. 하지만 그 결과 과거의 공정성이 파괴되었으니, 이는 국가의 기틀을 무너뜨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선을 넘는 순간, 그 이후의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 P236
이 적나라한 고발의 행간에는 특혜를 주면 줄수록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오히려 더 방만해졌던 명문가들의 한심한 작태가 담겨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말이다. 집안의 이름값만으로 급제할 수 있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면, 노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안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습속’이 한 번 생겨나면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지며 뿌리내린다. 뜻이 바른 사람이라면 어찌 이를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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