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XX 새소설 14
김아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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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른 이야기지만, 전부 같은 데서 비롯한 하나의 이야기다. 그들은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건 하나의 목소리면서 동시에 무수히 다양한 목소리다. 1990XX』는 그 이야기를 각기 존재하는 고유의 목소리들로 들려주기도 하고, 하나의 목소리로 들려주기도 한다. 1990년에 XX 염색체를 갖고 태어났어야 할 아기들과, 1990년에 XX 염색체를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았던 사람들과, 1990년에 XX 염색체의 아기를 임신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는 속설 때문에 1990년 많은 여아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 속설의 유래를 찾는 데서 소설은 시작한다.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경오년 백말띠의 해에 모리 오이치라는 일본인 여자가 충무로에 있는 자기 집에 방화를 저질러서 일대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그래서 백말띠 여자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속설은 특정 인물이 만들었다. 하지만 사회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속설은 여자 아기를 낙태해야 하는 구실을 제공했다. 아기들은 속설 뒤에 숨은 사회의 여성 혐오로 인해 희생되었다. 속설로, 아니 여성 혐오로 뒤덮인 세상에서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살아남았다.

 

소설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등장한다. 한데 뒤얽히기도 하고 같이 살아가기도 한다. 각 장은 전부 다른 화자가 등장하며, 모두 다른 방식으로 비현실과 현실을 넘나들며 진실을 이야기한다. 인물들은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지만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모인다. 살아남은 여자들이 싸워서 그 이야기들을 얻어내고 간직한다. 실제로 일어났으나 모두가 아는 모종의 이유로 소거되었던 그 이야기들에 다시 목소리를 부여한다.

 

“1990XX”. XX는 여성의 성염색체를 뜻하는 과학 용어이지만 마치 사라져야 하는, 그래서 X표 쳐져야 하는 존재였다. XX. 부정당하고 조각난 존재들. 1990XX』는 XX에 가려졌던 XX 존재들의 이름들을 호명한다.

 

고수현, 지혜, 소리, 엄지나, 강은주, 오한별, 현아, 박이현, 지안이, 새롬이,

목소리를 되찾은 존재들이 세상을 조각내고 다시 돌아온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각각 말띠, 호랑이띠였다. 말띠와 호랑이띠 해에 태어날 여자아이들은 모두 과거에 살았던 미친 여자들의 운명을 닮을 것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날들은 기억에서 완벽히 소거한 채. - P43

뉴스에 따라 내가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인간에게 도덕이란 우리 짐승에게처럼 지켜야 할 규율이 아닌,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 P62

"불완전한 여자아이들이 더 이상 버려지지 않고 짐승들이 배척받지 않는 순간 우리 왕은 모두 소멸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고양이 시민들이여. 소멸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소멸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소멸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P86

아무것도 안 해.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투쟁했어. - P233

왜 양대기와, 양대기의 이론에 동의하는 자들은 여자아이를 제거해야만 후손의 기를 세울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그들이 말하는 기는 얼마나 나약하기에 여자아이에게 지는 걸까.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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