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 일상을 파고든 마약의 모든 것
양성관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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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약을 못 먹는다. 그래서 웬만한 사소한 감기 증상으로는 약을 먹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 전에도 약을 준비해 놓지 않았다가 생고생해서 그다음에는 미리 약국에 타이레놀을 사러 갔다. 그런데 알약을 못 먹으니 갈아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못 간다고 그냥 주셨다. 그와 같은 성분의 다른 약을 권해 주지도 않았다. 이유도 듣지 못했다. 결국 집에서 절구로 빻았다.


서방정은 특수 코팅을 해서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고 오랫동안 지속되며, 일반적인 알약보다 용량이 1.3배가량 많다고 한다. 타이레놀도 서방정인 게 있다고 한다. 상자를 버려서 내가 산 타이레놀이 서방정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맞다면 모든 의문점이 풀린다. 그리고 나는 용량이 많은 약을 먹은 게 된다. 다행히 타이레놀은 비마약성 진통제로 내성이나 중독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실수로든 고의로든 만약 비마약성 진통제가 아닌 마약성 또는 향정신성 약물을 오남용하게 된다면 타이레놀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진통제나 다이어트 약과 같이 특정한 약을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 등 의사로 일하면서 대면했던 약물 중독자들을 책의 프롤로그에서 소개한다. 물론 친구나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의 권유로 마약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어쨌든 어떤 경로로든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결국 중독된다.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는 먼저 1부에서 개인이 마약에 빠진 뒤 겪게 되는 감정과 변화 양상을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2부에서는 마약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시스템과 그 역사를 이야기한다. 마약의 시작과 끝을 개인과 사회라는 두 차원에서 다뤄서 마약이라는 대상과 마약을 둘러싼 사람들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게 책을 구성했다.


SNS를 통해 마약을 구하기가 쉬워졌다지만 내게 마약은 아직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나 2부의 내용은 더욱 낯설고 새로웠다. 아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한국은 이제 마약을 생산하는 국가가 아니라 소비하는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약을 생산하는 일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주로 가난하고 정치가 부패한 국가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니 말이다.


대표적으로 콜롬비아의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미얀마 샨족의 쿤사가 있었다. 그들은 지역 주민의 민심을 얻기 위해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학교와 같은 시설을 만드는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그들을 영웅 대접하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자기들의 범죄 행각을 가리기 위해 그랬을 뿐이었다. 경제 개발이 독재를 정당화할 수 없듯이 그들의 범죄 또한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이렇게 생산된 마약은 그 지역에서 소비되기도 하지만 해외에 팔리기도 한다. 공급과 수요가 맞물리기에 마약은 국경을 넘어간다. 그리고 국경 너머에서 마약을 찾는 사람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많다고 한다.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마약을 시작하는 것이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은 마약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본주의의 세상에서는 마약도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마약 중독자를 범죄자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약사범을 처벌하고 교도소에 수용하는 것보다 중독을 치료하는 게 돈이 더 적게 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한국 사회가 치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실효성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자꾸만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려고 한다. 사회든 마약 중독자 본인이든 마찬가지다. 자기를 지나치게 믿는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스로 기대를 저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안다. 그럼에도 자기를 과신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렇게 마약에 중독된다. 자기는 언제든 마약을 끊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치료 없이 마약을 끊는 건 불가능하지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저자는 끝까지 경고한다. 그러니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라고 말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향정신성 약물을 처음 접한 후 자의로 약을 복용하다가 약이 마약이 되거나 처음부터 마약을 찾는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것처럼, 마약에 빠져드는 것이다. - P46

한국에서도 마약 투약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거나 무직이다. 정규직은 30.9%에 불과하다. 마약 투약자 중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 비율은 54.4%에 이른다. 게다가 지난 한 달간 수입이 50만 원 미만인 비율은 절반이 넘는 52.2%에 달한다. 가난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약만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더 아프고 알코올 등에도 더 취약하다. 가난하면 치료를 받지 못해 더 아프고, 아프니까 일을 할 수 없어 더 가난해진다. 뭐가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악순환이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가난해서 마약을 하고, 마약을 하니 가난해진다. - P95

더 센 약을 하면 진짜 중독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신은 끝까지 안 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에 마약을 할 때도 그랬다. 친구들이 하면 나도 안 할 수가 없다. 다들 담배를 피우는데 나만 안 피울 수 없고, 다들 술을 마시는데 나만 안 마실 수 없다. 다들 마리화나를 하는데, 다들 코카인을 하는데 나만 빠질 수 없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있어도 한 가지 술만 마시는 사람은 없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 P109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는 ‘의지’로 뛰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에 문제가 있으면 ‘의지’, ‘결심’, ‘마음’만으로 나을 수 있다고 여긴다. 업 계열의 코카인이나 메스암페타민 중독자들이 특히 그렇다. - P117

마약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옆에서 다른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도 모른다. 마약은 둘이 하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그렇게 약을 하다 자신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목숨을 잃는다. - P146

1ha당 코카 잎 6.4t을 수확하는 것만으로도 커피를 재배할 때보다 2.1배 높은 매출을 올린다. 여기에 코카 반죽까지 만들면 코카 잎을 재배하는 것보다 5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콜롬비아 농부가 불법임을 알고서도 코카를 재배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 P187

마약중독자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사람들의 관심조차도 차별적이었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이미 ‘좀비 거리’와 같은 곳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06

다른 마약은 왠지 불량한 이들이나 하는 것 같아 꺼려지는 게 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처방한 마약은 달랐다. 기존의 더럽고 불결한 마약에 비해 깨끗하고 청결해 보였다. 또한 기존의 코카인이나 헤로인 따위를 파는 ‘위험한’ 마약 딜러가 아니라 ‘안전한’ 병원과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약을 하는 이들도 ‘특수한’ ‘소수의’ ‘범죄자’가 아니라 ‘평범한’ ‘다수의’ ‘보통 사람’이었다. FDA가 의사에게 믿음을 준 것처럼 의사는 환자에게 믿음을 주었다. "(전문가인) 의사가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존의 마약보다 훨씬 더 쉽게 옥시콘틴에 빠져들었다. - P263

마약중독자를 1년 동안 치료하는 데는 1만 8,000달러(2,300만 원)가 들지만, 죄수를 1년간 수감하는 데는 3만 9,158달러(5,090만 원)가 든다. 마약중독자 치료비가 수감자 비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마약중독자는 치료를 받으면 50%가 약을 끊는다. 하지만 치료 없이는 거의 끊지 못한다. 마약중독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비용 측면이나 재발 방지 측면에서 모두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대부분의 예산을 체포와 처벌에 사용하면서 마약중독자의 재발을 막는 데 실패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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