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 타인을 희생시킬 수 있다.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양심은 폐기하고, 그 자리에 순도 100%의 이기심을 주입하면 된다. 타인을 철저히 수단으로써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자기를 철저히 숨길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자기가 충분히 지배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추면 거의 완벽하다.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는 그런 이야기다. 선양의 다섯 아이들은 호기심 때문에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진실은 그들에게 “창백한 손”을 내민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이후 각자의 삶을 살다가 선양 에덴병원 병원장이 살해되면서 다시 선양으로 돌아가 15년 전 사건을 돌이켜 본다.

그들을 지켜보는 화자가 반복해서 진술하듯 선양은 너무 좁은 동네다. 무엇이든 은폐할 수 있어서 어떤 욕망이든 실현할 수 있는 동네, 악을 실행하는 데 최적의 동네, 그래서 악과 악을 숨겨 주고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악이 결합하여 거악(巨惡)이 생겨날 수 있는 동네인 것이다. 악으로 인해 악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그렇지만 악을 감추고 있던 거대한 벽에도 균열을 낼 수 있다. 그 틈으로 진실을 목도한 뒤에 일어날 일은 어느 정도는 목격자에게 달려 있다. 그들이 진실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미래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악을 마주했을 때 그 악에 대항하기 위해 본인도 기꺼이 악을 체화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고. 자기만의 “낙원”을 만들기 위해서 “창백한 손”을 타인에게 뻗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어쩌면 악인이 되지 않은 사람은 살면서 자신이 통째로 잡아먹힐 만큼 거대한 악을 직접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일지도 모른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 실체를 캐내면 통쾌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기분에 휩싸였다. 무서웠다. 그 사실을 알기 전의 삶으로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 P2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