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장아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은 선별적이다.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일수록 쉽게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과거에 잠시 내 삶을 스쳐 지나간 것들은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걸 쉽게 잊었다. 어렸을 때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에 어울렸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그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공간의 구조를, 그들과 했던 놀이를. 유년의 대부분을.


그러니 일주일이면 모두가 준후를 잊을 거라는 새별의 말과, 그 말처럼 바로 전날까지도 사라진 준후를 걱정하던 친구들이 준후를 잊고 준후가 누구냐고 되묻는 장면은 판타지라는 장르적 설정 아래 감춰진 현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기 삶에 준후가 남긴 흔적이 선명한 사람들만이 준후를 잊지 않고 되찾으려 애쓴다.

정확히 말해서 준후는 실종된 게 아니라 새로 변한 것이다. 희미는 신목(神木)에게 준후가 자신을 좋아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러고 돌아가던 중 민진과 함께 있는 준후와 우연히 마주치고 준후에게 묻는다. 자기를 좋아하냐고. 명쾌하게 답하지 않는 준후에게 희미는 당장 사라지라고 화를 낸다. 그 직후 준후는 새가 된다. 그것도 손만 한 곤줄박이로. 희미, 민진, 새별 세 소녀는 준후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그들이 해결책을 찾아 다니면서 잊혔던 과거의 풍습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저기에 깃들어 있는 신과 혼들이 삶의 세계로 다시 소환된다. 신도시에서 그들은 파괴된 환경과 사라진 마을의 조각들을 모아 맞춘다. 신도시가 밀어낸 그 땅의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다시 준후를 기억하는 일과 연결된다. 이 모든 것은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대상을 잊지 않고 지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새별의 말마따나 “나를 지킨다는 것은 우리를 지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p.179)가 된다. 세 소녀는 아무도 지키려 애쓰지 않는 것들에게서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희미는 자기가 준후에게 사라지라고 말해서 준후가 새로 변해 날아가 사라져 버릴 뻔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민진은 새, 특히 곤줄박이를 좋아하고, 새별은 그들의 거주지인 새별시의 모든 것에 애정을 느낀다. 준후가 새로 변하는 광경을 목격한 그들은 준후가 다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마음들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한다. 잊음으로써 잃지 않기 위한 그들의 분투는 모두를 지키는 힘이 된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원하는 마음이란 그랬다. 빛이자 온기였다. - P107

그러니까 제가 정말로 소망하는 건요, 준후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거예요. 잊지 않는 거예요. 상처 입은 일까지 계속 기억하는 거예요. - P1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