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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그림 - 숨겨진 명화부터 동시대 작품까지 나만의 시선으로 감상하는 법
BGA 백그라운드아트웍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책을 ‘본다’고도 하고 ‘읽는다’고도
한다. ‘읽다’라는 단어에는 글을 소리 내 말하거나 이해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소리 따위가 전하는 내용이나 뜻을 헤아려 알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림을 읽는다는 말은 낯설기는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니 그림 역시 책처럼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의미를 분석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체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훈련해야 한다. 훈련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내보일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그 자신감을 갖기 어려울 뿐이다. 한국에서
성장했다면 정답을 외우는 데에만 10년 이상을 보냈을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몸에 밴 정답을 찾는 습관을 쉽게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나는 전공 과제를 할 때 논문을 아주 많이 참고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논문을 찾아 읽고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처음으로 참고 문헌
하나 없이 과제를 했는데 다행히 점수를 잘 받았다. 좀 극단적인 방식인 듯하지만 어쨌든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은 주체적으로 읽는 게 어렵다. 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너무나 부족해서 내가 틀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내가 읽는 그림』은 틀릴
걱정은 하지 말라며 용기를 심어준다. 미술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시인,
문화평론가, 방송 PD 등 다양한 필진이 그들만의
눈으로 미술 작품을 읽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을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작품을 읽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다.
나도 다시 쓰고 싶어졌다. 작년 이맘때쯤 미술비평론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미술 글쓰기를 향한 갈망과 절망을 동시에 키웠었는데, 그 후로 절망이 갈망보다 더 커져서
쓰지 못했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미술을 이야기해도 될까,
나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쓰고 싶다. 문학을
이야기할 때 정답이 없다고 하니 미술도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해석이든 괜찮다는 말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무책임함을 책임져 보고 싶다. 비난을 두려워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쓸 수 없으니 말이다. 몇 달
전에 사놓고 책장에 고이 꽂아둔 미술 글쓰기 책을 조만간 꺼내 읽어봐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누군가 기록을 해서 역사가 되면 그 사실은 죽지 않고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계속 남는다. 앞으로는 어떤 사건들이 기록될까? 어떤 이미지가 미술관에 걸리고, 어떤 이미지가 교과서에 남을까? 이 그림은 1854년에 그려졌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불타고 있다. 그림이 존재하는 한 교회는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불타고 있을 것이다. - P18
베케트가 스스로에게 이러한 물음을 되묻는 이유는 세상이 우리에게 건넨 답들이 너무도 충분치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술가는 이미 주어진 답들 사이에서 ‘만약’이라는 가정 속에 상황을 견주는 일보다, 세상에 없는 답을 발견하는 일을 작업으로 실천합니다. 작가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 답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니, 평안한 마음으로 그림을 마주하면 어떨까요? 예술은 늘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서 비롯된 미미한 감각을 지지하는 법이지요. - P63
무엇을 그렸는지 잘 보이지 않으면 우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본다. 그리고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래도 알 수 없을 때는 관습적이고 고정된 시각을 덜어내고 다른 방식으로 보려고 노력해본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과 마주할 기회를 찾기 위해. - P75
과거의 나를 직면할 용기를 내는 것은 꽤나 힘겨운 일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된다. 선택적 망각이다. 뇌가 스스로 하는 자기 합리화일까. 우리는 대부분 미화된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 P90
진심.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진심이라는 단어의 무게. 진심의 무게는 내뱉는 이와 감당하는 이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 P124
드디어 탈출한 초록색 정수리. 바깥에 나와 자유의 냄새를 맡은 뒤 온몸에 밀착된 부목을 원수처럼 훑어보다가, 문득 깨달아버렸습니다. 나를 옥죄고 있는 부목도 한때 꿈이 있는 나무였다는 것을. - P172
눈물과 미소, 어느 쪽이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을 믿느냐다. 믿게끔 만들 수 있느냐다. 어느 쪽을 믿고 싶은가, 그것이 곧 진실이다. 그러므로 진실은 곧 거짓의 시작이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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