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폴리스맨
베선 로버츠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그의 시선으로 나를 본다. 내가 가진 것들을 그는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한다.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에 의해 평가당한다. 그 매서운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놀라고 움츠러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에겐 가당찮은 재단사 행세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를 내 시선만을 기준으로 보니까 말이다. 이 소설의 세 주인공 경찰 톰과 교사 매리언, 학예사 패트릭, 그들 역시 시대의 시선과 법으로부터의 속박에서 자신과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다가 결국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말았다.


톰에게는 결혼 전부터 만나는 남자가 있었다. 패트릭에게 톰은 사랑하는 나의 순경님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1950년대 영국 브라이턴에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동성끼리 사랑을 나누기만 해도 범법자가 되었었다. 심지어 문학 하는 남자, 미술 하는 남자도 혐오의 대상이었다.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었던 시대에 그들은 타인의 눈에 띄지 말아야 했다. 그러니까, 톰은 정상처럼 살기 위해 결혼했다. 그러나 하필 그가 고른 결혼 상대는 매리언이었다.


매리언은 친구 실비의 오빠인 톰을 짝사랑하다가 끝내 결혼에 성공했다. 매리언과 톰 둘 다 결혼을 원해서 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일치하지 않았다. 매리언이 꿈꾸는 톰과 함께하는 미래 속에 아이는 없었다. 매리언은 아이에게 얽매이지 않고 교사로서 계속 일하고 싶어 했다. 이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여성상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상성을 띠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톰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매리언이 일을 그만두길 바랐지만, 매리언은 굴하지 않았다.


톰이 결혼을 택한 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매리언 입장에서 보면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틀어진 데 대한 책임이 톰에게만 있다고 볼 수도 없을 듯하다. 매리언은 결혼 전 실비에게 이미 톰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톰의 성 정체성을 눈치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면서 톰에게는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길 바랐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 서서 서로에게 자신의 욕구를 관철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살아남고자 하는 마음이 충돌해서 그들은 상처를 입고, 오랜 시간을 남과 같은 사이로 흘려보내 버렸다. 그렇지만 매리언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데서 더 나아가 고백함으로써 늦게나마 상처를 봉합할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마음이 상처로 완전히 얼룩져서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지 않았을까.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톰은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셔츠를 벗고 몸을 구석구석 씻었다. 난 늘 톰의 그런 점이 좋았다. 그런데 패트릭 당신과 있을 때는 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막 떠오른다. - P49

그러면, 그 모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정상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진저리가 나도록 싫다는 사실을? - P266

우리 사이에 고통만이 아니라 다정함도 있었다는 걸 당신이 알도록. 우리 둘 다 실패했지만 우리 둘 다 노력했다는 걸 알도록. - P3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