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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트, 묘지지기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2년 7월
평점 :
용기가 부족해서 고백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안고 산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잊을 수 없고, 문득문득 떠올라 피식거리게
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웃을 수는 없어서 종내 쓰고 있던 안경을 벗게 하기도 하는, 결코 타인이 대신
견뎌내 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묘지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있다. 말을 할 수 없어서
들려줄 수 없는, 어쩌면 일부러 들려주지 않은 망자들의 이야기는 그들과 함께 묘지에 묻혀 있다. 비올레트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떠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품은 채 망자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묘지를
가꾸는 묘지지기다. 다양한 상처가 공존하는 그곳을 비올레트는 꽃들로 아름답게 꾸몄다. 묘지라는 공간의 의의를 상실과 추모의 공간에서 정원이라는 편안한 쉼터로 확장시켰다.
비올레트가 가꾼 묘지 정원은 그녀의 삶과도 닮았다. 이 소설은
비올레트라는 한 인간이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잃는 비극을 겪고 회복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상실과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밟은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녀가 가꾼 묘지에서
진행되는 장례 절차와도 비슷한 듯하다.
묘지에는 망자뿐만 아니라 망자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이 모인다. 장례는
상실로 인한 상처에서 벗어나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장례라는 형식적인 문화는 어쩌면 망자를 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리
예우를 다한들 망자는 그것을 직접 누릴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장례는 아직 더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슬픔에 계속 잠겨 있지 않고 삶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행해지는 게 아닐까.
비올레트의 묘지 정원은 그런 의미에서 그 어떤 묘지보다도 더 아직 살아 있는,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은유한다고 볼 수도 있다. 비올레트는 자신이 상실한 존재가 묻혀 있는 그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을 들임으로써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 필리프가 묘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
내 마음에도 내가 가꾸어야 하는 묘지들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묻혀 있다. 이미 잃어버려 볼 수 없는 것과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함께 품고 살아간다. 앞으로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는지는 마음속 묘지를 어떻게 가꾸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금 좋아하는 존재들을 곁에 두는 일,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묘지에 수많은 묘비명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흐르는 세월의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추억을 꼭 붙들기 위해. - P21
사실 우리 장의사들이 상대하는 건 삶이라고. 어쩌면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더. 왜냐하면 우리를 찾는 건 남은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이거든. 신부님이 우리한테 늘 온화하게 하시는 말씀 있잖아. ‘형제님들, 우린 죽음의 산파들입니다. 우린 죽음을 출산하니까요. 그러니 생을 누리세요, 꼭 쟁취하십시오.’ - P155
"삶은 절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종이 한 장을 들고 찢어보세요. 찢긴 조각들을 아무리 이어 붙인들, 찢기고 구겨진 자국이며 테이프의 흔적은 영원히 남잖아요." - P246
"비올레트, 담쟁이는 나무들을 숨 못 쉬게 해. 잊지 말고 잘라줘야 해. 절대 잊어선 안 돼. 너도, 생각들이 너를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그 즉시 전지가위를 들고 괴로움을 잘라버려." -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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