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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평점 :
한 여인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카메라는 무덤덤하게 그녀를 무채색으로 담아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에 뒤섞여 있는 듯한 슬픔과 절망과 욕망은 카메라 렌즈의 무정함을 뚫고 나와 사진을 보는 나에게 전달되었다.
이 책의 표지에
자리한 초상의 주인공, 카미유 클로델이다. 카미유는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단지 그의 뮤즈만으로 남지는 않으려 했었다. 저자는 온전히 자신으로 남고자 했던 여성 조각가의 들리지 않는 마음에 귀 기울여 그녀의 삶을 포착해냈다. 나는 시인인 저자의 아름답고 함축적인 문장들의 안내를 받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찬찬히 아리게 읽어나갔다.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들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니, 홀로
있었기에 너무나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카미유의 천재성은 벼랑 끝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기는커녕 그녀를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딸이라는
이유로 엄마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게. 그녀는 내쳐졌다.
카미유는 그 속에서
인정받고자 했다. 한 명의 떳떳한 예술가로 살아내기 위해 애쓰다가 상처받았고, 그 상처를 다시 예술로 승화해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깊이 팬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았던 듯하다. 피해망상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 예술가로서 카미유 클로델의 삶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
막이 내려졌다.
카메라 렌즈까지
꿰뚫어버린 카미유의 슬픔과 절망과 욕망의 삶. 어쩌면 절망이라는 건 욕망이 충족되지 못해서 발현하는
감정이 아닐까, 욕망할 대상조차 없다면 절망할 일도 없지 않을까, 조각을
향한 욕망이 너무나 커서 카미유는 극도의 절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정신병원 간호사의
권유도에도 조각을 하지 않았던 건 다시는 파멸에 이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내 마음대로 그녀의 마음을 추측해본다.
알지 못했었던 카미유의
삶을 끝까지 읽고 다시 표지의 카미유와 마주했을 때 그 눈동자에서 그리움과 외로움까지도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고 내친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을 그녀는 죽을 때까지 고이 간직했다. 그녀는 욕망 때문에
절망했고, 욕망 때문에 외로워하고 그리워해야 했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최초의 숨결과 최후의 한숨 사이에 있는 삶의 모습은 모두 다르고 결국 같다. - P13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깨닫는 일은 어쩌면 불운이며 어쩌면 행운이고 혹은 둘 다인지도 모른다. 빌뇌브에서 그녀는 미켈란젤로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파리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저 훌륭한 조각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인정하는 위대한 조각가로 남고 싶었다. - P22
어떤 것이든 진실하게 창조된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공통된 감정 상태를 만들어낸다. 마치 첫번째 슬픔 같은 것을 나눈 사이처럼. - P71
영혼이 자유롭게 숨 쉬어도 어떤 해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이미 알았는지 모른다. 자신을 다 소진해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예술을 하는 일과 진정한 인생을 사는 일이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걸. 그녀의 작품이 그녀 삶의 이야기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 P93
자신의 독창성과 천재성을 로댕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만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눈을 씻어주고 싶었다. 여자라는, 제자라는 부당한 차별 없이 당대 남성 예술가들과 동등하게 평가받기를 원했다. 이름난 남자 스승을 두었다는 게 남자 예술가보다는 여자 예술가에게 왜 더 큰 제한이 따르는지 억울할 뿐이었다. - P97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잘 이해해주길 바라는 일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무심한 사람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희망을 조금씩 뒤로 미루며 붙잡으려 할 때 얼마나 스산한 기분이 드는지. - P152
1943년10월19일, 카미유 클로델의 사망증명서가 작성되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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