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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내 10대는 갈갈이 찢겼다. 아버지에게 품은 화산 같은 증오. 사형집행인 같은 아버지의 손. 종기처럼 곪은 그의 숨결. 아버지가 나에게 단 한 번도 해 준 적 없는 사랑의 말들. 어머니의 비명. 질의 웃음. 도프카.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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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이에서 노출되는 폭력은 더욱 잔인하다.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마땅할 사이에서 행해지는 폭력. 온 힘을 다해 미워할 수도, 도망갈 수도, 안심할 수도. 치유될 수도 없을 것만 같다. <282쪽,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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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인용한 두 부분으로 이 책은 설명될 것 같다. 《우리 집에는 방이 네 개 있었다. 내 방, 동생 질의 방, 부모님의 방, 그리고 시체들의 방》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의미를 중반 이후부터 브레이크 없이 내달린 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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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나'와 동생 질 눈앞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 그 후 달라져버린 질을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나'는 '타임머신(시간여행 자동차)'을 만들어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나'는 질을 사랑했고, 모든 일을 바로 잡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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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은 동생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누나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어머니의 주된 기능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11쪽)》는 말에서 느껴지는 비정상적인 분위기는 《우리 집에서 가족 식사란, 커다란 잔에 담긴 오줌을 매일 마셔야만 하는 벌과 비슷했다(26쪽)》라는 문장과 《아버지가 소파로 돌아가려고 일어나는 순간에서 비로소 자유가 찾아왔다(27쪽)》는 문장에서 고조되다가 아래 이어지는 문장에서 한 가정의 비극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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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머리를 들어 올려서는 식탁에, 똑같은 지점에, 깨진 접시 파편이 널린 곳에 여러 번 내리찍었다. 나는 어느 것이 어머니의 피이고, 어느 것이 스테이크의 피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가 없었다.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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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신체도, 감정도, 모든 것이 변해버린 후에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다. 《돈을 벌어서 떠나》라는 어머니의 충고에 《엄마, 엄마는 왜 인생을 놓아버렸어요?》라고 묻는 것 외에는 어떤 위로의 말도,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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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은...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기로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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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하던 때가 여름이었고, 그 후로의 이야기도 모두(아마 맞을거다) 여름에 진행된다. 계절은 분명 <여름>인데, '나'의 집은 아버지로 인해 한겨울보다 더 혹독한 <겨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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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