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강
은희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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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땐 누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식대로 살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른 살에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대해서도 과대망상은 없다. 세상이란 자기를 걸어볼 만큼 가치 있지도 않다. 그것은 의미 없는 순간에도, 의미있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상영되고, 누구의 손에도 보관되지 않고 버려지는 지리멸렬한 영화 필름 같다. 세상은 외투처럼 벗고 입는 것.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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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구판절판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존재이다.
예컨대 1천 송이의 꽃이 있다고 치자.
한 송이 꽃은 1천 송이 중 하나의 꽃에 지나지 않지만,
그 한 송이 꽃이 없다면 999송이의 꽃은 존재할지언정
1천 송이의 꽃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 한 송이 꽃을 통해
1천 송이의 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해 자신도 1천 송이의 꽃이 되는
한 송이 꽃이라는 사실을 납득하는 일이다.-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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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절판


지고한 것에 대해 복종하고 헌신하는 태도를 톨스토이는 감격벽이라고 불렀다. 누구에게나 감격벽으로 충만한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감격하기 쉬운 습벽은 아마도 고결한 이기주의와 맹목적인 이타주의의의 결합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감격벽을 가진 사람은 결코 비열해질 수 없고, 실리적인 문제에 어둡거나 적어도 그런 체해야 하며, 증오와 애정의 선이 분명한 대신 그 근거는 박약하기 짝이 없고, 세상이 이편과 저편으로 환하고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 지고한 가치에 스스로를 비추어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습벽은 냉철한 실용주의의 대척점이기도 하다.-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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