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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한 키즈 카페에 갔다. 입장 시 아이 팔목에 팔지를 하나 둘러 줬는데 그 안에 장착된 센서가 아이의 놀이 영역을 기록을 하였다. 퇴장 시 아이가 신체, 창의, 인지, 조작구성 표현 등 각 영역에 어느 정도 머물렀는지 그래프와 설명이 쓰인 활동지를 받았다. 아이의 놀이 성향을 파악하는데 꽤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센서가 우리의 몸에 부착되어 신체지수, 취미, 그리고 의식까지 파악하고 더 나은 삶의 패턴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구글은 우리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생체정보장치를 이용하여 건강 상태를 분석할 수 있는 연구에 들어갔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구와 통계를 바탕으로 배우자와 대학 전공, 직업 선택 등 알고리즘의 선택에 의한 시대가 오고 있다. 나보다 더 나를 알고 판단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우리는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하라리는 이렇듯 21세기의 신기술들이 “인본주의 혁명을 뒤집어, 인간에게서 권한을 박탈하고 비인간 알고리즘들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먼저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 인간 중심 사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자. 하리라의 전작인 <사피엔스>에서 인류는 서로 협력하고 공통된 신화를 믿으며 문자, 농업, 그리고 과학의 혁명을 일궈온 과정을 언급했다. 농업혁명과 함께 유일신을 믿으면서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공통의 신을 믿으며 조직적으로 파이윰 호수와 피라미드 등과 같은 거대한 협동의 결과물도 만든다. 이후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증기, 전신 기계, 섬유, 자동차의 생산이 사피엔스의 주된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반면에 전염병과 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늘 고통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수백 년간 사파엔스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줬던 기아, 역병, 전쟁은 이제 인간의 힘으로 중재 가능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제 인류가 고민해야 할 의제는 불멸, 행복, 신성이라으로 옮겨졌다고 말한다. 즉 인간의 몸, 뇌, 마음이 생명공학과 알고리즘으로 조작이 가능해졌다. 스스로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하고 살아왔던 인본주의 세곅 아닌 알고리즘에 따라 우리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21세기에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체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높은 가치를 가지는 이유를 자유의지에서 찾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어서 어떤 특정한 것을 원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과정들이 그런 느낌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실험자가 스위치에 두 손을 올려놓고 마음 내킬 때마다 누르는 실험을 한다. 스위치에 손이 가기 전에 과학자들은 실험자의 뇌신경 활성을 보고 어떤 스위치를 누를지 예측이 가능했다. 즉 개인의 욕망과 결정은 미처 의식하기 전에 뇌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인간의 뇌는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다. 인간의 좌뇌는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허구의 기능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은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허점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머지않아 자유 의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유용한 장치들, 도구들, 구조들의 홍수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비 의식적 알고리즘이 인간의 의식보다 우리 삶의 통계를 알고 있는 지능의 시대 말이다. 정교한 알고리즘의 발달로 인해 수백만 명의 직업의 주인이 대체될 것이고 알고리즘이 인지기술을 요하는 직종까지 인간보다 더 잘하게 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의 의식까지 넘어보는 미래의 초인류가 인간의 일과 의식을 대처하는 세상이 그려져 섬뜩하기만 하다.


불멸과 신성의 길에 접어든 사피엔스의 욕망은 계속될 것이다. 저자는 “21세기는 진보의 열차에 오른 이들은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신성을 얻지만 뒤처진 사람들은 절멸에 이를 거라” 예측한다. 열차에 오른 이들은 데이터와 신기술에 접근 가능한 실리콘 밸리와 부유한 계층에게, 그리고 대다수가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을 알지 못한 낙오자들이 되지 않을까. 미래는 알고리즘 확보의 자본이라는 궤도에 연장선상에 있을 듯하다. 하라리는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기보다는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데이터 베이스는 점점 더 몸을 키울 것이고 통계는 더 정확해지고 알고리즘은 더 개선되는 세상 앞에 선 사피엔스의 선택 폭은 좁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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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 여든 앞에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
권정자 외 지음 / 남해의봄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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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이 되어 꽃길이 열렸다.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면서 말이다.

스무 명의 순천 할머니들은 버스를 타고 서울 전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을

시작으로 전국 동네 책방 나들이 다니신다.

내년 4월에는 미국 도시에서 순회전시도 계획 중이다.

할머니들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이제야 80년 세월을 토로한다. 스무 명 할머니들의 첫 문장은 서러움이다. 딸로 태어나 오빠만 공부할 수 있었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밥할 때도 부지깽이를 시커멓게 태워서 내 이름하고 1부터 100까지를 썼습니다. 내가 아는 글자는 모두 그것뿐이었습니다.”

 

으레껏 한글을 배우는 우리에게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종이를 주면서 생년월일을 쓰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 생년월일이 뭔지도 몰라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놀래서 나를 다 쳐다봤습니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리고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면사무소나 은행에서 용지가 날아와도 무슨 내용인지 몰라 답답하셨다. 글을 모를 때는 남한테 물어보기 부끄러워 버스를 놓친 적도 많으셨다.

 

하라면 해야 하는 결혼였다. “나는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고 맘이 갔습니다.” 신랑은 돈이 없어 남의 집 닭장을 얻어 신혼 방을 만들었다. “나는 속았다는 생각에 살아야 할지 고민이 돼서 밤마다 뒷산에 가서 울었습니다.” 가난했기에 집안일을 하고 식당일을 하고 나이드니 허리수술 하고. 이제 여든이 되니 글을 배울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내친김에 그림도 같이 그리면 어떨까요? 2017년 순천그림책도서관은 김중석 그림책 작가에게 할머니들을 위한 그림일기 수업을 제안한다. 작가는 일산에서 순천까지 왕복 여섯 시간이 넘는 길을 매주 다니게 되었다.

 

그림일기 속 할머니들은 역사 현장에도 계셨다. 한국 전쟁 때 14살 소녀는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작은집 식구와 우리를 냇가로 끌고 가서 작은 아버지를 총으로 쐈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우리들은 무서워 벌벌 떨었습니다.” 또 다른 소녀는 열한 살 때 피난을 가다 죽은 동생을 어디다 두고 갈 수가 없어서 하루 종일 업고 다녔다.

 

글을 배우니 그림일기 제목이 달라졌다. ‘넓어진 마음’, ‘살맛나는 세상’, ‘최고의 행복’,‘배움이 준 선물’,‘짜릿한 행복’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제 혼자 은행 일을 보신다. 비밀통장도 만들고 노래교실에서도 자신 있게 마이크를 잡으며 자막보고 노래를 부르신다. “핸드폰 문자도 배우니까 병원에 있는 남편한테 예쁜 꽃도 찍어 보내고 힘내라고 문자도 보냅니다.“

 

스무 명 할머니들의 인생사가 담긴 그림일기는 슬프고도 따스하다.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글과 그림이 80년의 어두운 세월을 환하게 만들었다. 이제 할머니들은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고, 손주들 그림책도 읽어주시고, 앞으로 글을 더 많이 배워 동네 이장도 되고 싶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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