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번역가가 선택하는 한국어는 실존하는 한국어가 아니기 십상이고—물론 일반적인 번역도 대개가 흉내낸 한국어라는 점에서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흉내낼 대상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의 한국어도 아닌 한국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사실 외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제3의 언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존하는 한국어는 이 제3의 언어를 흡수하면서 그 외연을 확대해나갈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외연 바로 너머에 한국어의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는 제3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거창하게 말하자면 한국어에 대한 번역가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언어적 선택이 번역가에게는 가장 근본적인 문화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누구의 한국어도 아닌 한국어 - P148

번역가는 다른 사람의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는 동시에, 번역가의 근본적 지위에 걸맞는 언어적 선택, 문화적 선택을 해야 한다. 스스로 좋은번역을 결정해나가야 한다. 이런 결정의 전제가 되는 공간, 실존하는 언어에 직접 의지할 수 없는 제3의 언어의 공간은 대단히 불안한 곳이다. 그러나 동시에 번역가가 가장 창조적으로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 누구의 한국어도 아닌 한국어 - P150

결국 어법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지는 않은 회색지대에 속하는 경우가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번역에서 두 언어의 차이를 문제삼는 것은 대개 이 회색 지대를 문제삼는 것이며, 그 의도는 대체로 회색 지대의 발생을 막자는 것이다. 그리고 회색 지대의 발생을 막는 방법은 번역가가 갖추어야할 중요한 기술에 속한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54

(......) 번역에서 다름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같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파생된것이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57

사실 의미는 텍스트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상호작용 가운데 동적으로 형성되어 나아가는것이고, 그나마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번역가가 이런 의미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번역 과정에서 두 언어의 차이를 고려하는 과제 못지않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58

(......) 번역가가 원문텍스트의 의미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이 목표언어의 규범적 표현법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다면, 또는 그렇게 할 경우 손실이 너무 크다면, 그때 나타나는 일탈적 표현들은 오히려 목표 언어의 표현력을 확대하는 부분으로 볼 수도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이 회색 지대를 목표 언어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지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그렇다면 번역가는 회색 지대를 없애는 동시에 강화하는 모순된 과제를 떠맡게 되는 셈이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59

베냐민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언어들은 불완전하다고 전제하고, 번역은 원문의 언어가 번역의 언어를 만나 완전한 언어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62

(......) 번역의 불가능성도 번역 자체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각각의 언어의 불완전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므로, 번역은 완전한 언어를 찾아가는 번역의 과제 내에 번역의 불가능성 문제를 끌어안아 불필요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63

이렇게 출발언어의 불완전성을 인식하면 번역가가 그 언어를 읽어나가며 의미를 적극적으로 형성해가는입장에 설 수 있고, 그와 함께 출발과 도착이라는 표현이 전제하는 일방통행성과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이렇게 볼 때 양 언어의 회색 지대 또한 적어도 그 가운데일부는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언어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부분임과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양 언어가 통합되어완전한 언어로 나아갈 가능성이 배태되는 곳으로, 즉 제3의 언어 또는 번역의 언어가 자리잡는 곳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64

충성의 대상이 양쪽 어느 한 항에서 제3항인 완전한 언어로 바뀌기 때문이다. (......) 적어도 그런 문제가 핵심의 자리에서는 물러날 것이고, 우리는 그 빈자리에서 번역논의의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 차이를 넘어서는 번역의 모색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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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어떤 면에서 번역가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외국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국어를 나의 한국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한국어로 구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 누구의 한국어도 아닌 한국어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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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봄은 꿈이 피어나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꿈이 깨어지는시대이기도 했다. S. 202

하지만 아름다운 피조물의 죽음을 보여 주는 이 그림은 (커트 헤르만, "홍학" (1917)) — 좁은 역사적 배경을 뛰어넘어 - 거친 현실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 우아한 것의 좌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1919년 봄과 여름, 많은 꿈들이 겪은 운명이었다. S.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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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시간, 놀라운 동시성뿐 아니라 시각의 다양성을 보여준 1918년 11월 11일의 세계적 순간 뒤에 역사는 다시금 무수한 개인적, 비동시적 이야기로 갈라졌다. S.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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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사람들이 2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S. 370

그들 대부분은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들 부류의 삶 전체가 하나의 실수로 취급되었고 뒷날의 사람들은 그 얼룩을 지우고 싶어했다. S.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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