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리처드의 즉위는 그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다양하게 공모에 가담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러나 극장에서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 관중들이 아주 독특한 형태의 협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악당의 악행을 지켜보면서 저게 성공하면 안된다고 하는 마음 다른 한편으로 저게 성공하는 게 아닐까, 혹은 성공하면 그다음은 어떠헥 될까. 더 나아가 저게 성공했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옮긴이). 우리는 악당의 잔인무도함, 예의 규범에 대한 철저한 경멸, 아무도 믿지 않지만 그래도 효력을 발휘하는 거짓말 등에 매혹되고 또 매혹된다. 무대에서 우리 관중을 바라보면서 리처드는 우리에게 그런 노골적인 경멸과 거짓말에 동참하라고 초청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혐오스러운 악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한번 굴복하는 생생한 체험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 P113

독재자는 미래를 적으로 삼는 것이다.
유령의 출현은 독재자의 억압된 양심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심리적 타락의 상징이라고 보아야 한다. - P146

"리처드 3세"에서 셰익스피어는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에서 번민하는 포위된 독재자를 묘사했다. "맥베스"에서 극작가는 그보다 더 깊게 들어간다. - P151

인생의 무의미에 대한 이런 허전한 체험은, 일부 부조리한 현대극에서처럼 인류의 실존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드라마는 그런 무의미함이 정확하게 폭군의 운명에 해당하는 것임을 강하게 주장한다. - P151

독재의 효과는 권위의 전반적 구조를 전도시킨다. 적법성은 더 이상 국가의 중심에 있지 않다. 오히려 국가 폭력의 희생자에게 있다. - P175

그러니까 국가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이고 보복적인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통상적인 국가의 견제 장치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 P177

셰익스피어는 독재자들이 권세를 오래 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권좌에 부상하는 방식이 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일단 권좌에 오르면 그들은 아주 무능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들이 통치해야 하는 국가에 대하여 아무런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그들은 지속적인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다. - P192

셰익스피어는 평민들이 독재에 맞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허한 구호로 쉽게 조종되고, 위협에 겁을 먹고, 사소한 뇌물을 받아먹는 등 자유의 믿음직한 옹호자가 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셰익스피어의 세계에서 독재자에 저항하면서 살해하는 사람은 결국 그 독재자와 같은 엘리트 계급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에서 독재자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잘 보여주는 인물을 창조했다. - P195

그의 작품들은 기존 지도자들에 대한 폭력-특히, 이른바 원칙을 앞세운 폭력-에 깊은 혐오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정부가 승인한 진부한 아부의 말들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드러낸다. - P242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는 평생에 걸쳐서 공동체가 붕괴하는 방식들을 깊이 명상해 왔다.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민중 선동가들이 부러워할 만한 수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셰익스피어는 혼란한 시대에 군중의 저열한 본능에 호소하면서 그들의 깊은 불안을 자신의 동력으로 사용하는 사람(독재자)을 아주 능숙하게 묘사한다. 그가 볼 때 당파 정치에 깊이 함몰된 사회는 기만적인 포퓰리즘에 특히 취약하다. 독재적 야망을 부추기는 사주 세력이 언제나 있고, 독재적 야망의 위험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집권에 성공한 독재자를 배후에서 통제하여 기존 제도를 적절히 공격하면서 그들의 사복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작가는 행정 능력도 없고 건설적 변화의 비전도 없는 독재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의 사회 혼란을 거듭 묘사한다. 비교적 건전하고 안정된 사회조차도 무자비하고 비양심적인 자를 물리치게 해주는 자원이 별로 없다고 셰익스피어는 생각한다. 또 그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는 합법적 통치자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장치도 별로 없다. - P244

그가 보기에 암살은 아주 절망적인 대책으로서, 흔히 그것이 의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셰익스피어는 경력 말기에 집단생활의 예측 불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집단생활은 어떤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 P245

그들 자신의 사악함과 민중들의 인간적 감정에 의해 파멸하고 마는 것이다. 민중의 감정을 일시적으로는 억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예 없애지는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생각에, 집단적 올바름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기회는 보통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에서 나온다.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의 세세한 움직임을 놓치는 법이 없고 그들을 자세히 묘사한다. - P247

네거티브 캐퍼빌리티는 곧 허구와 현실을 교묘하게 융합하여 그 둘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역자 후기) - P262

다시 말해 왜 악에 매혹될까? 그 이유는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 비록 잠시나마 리처드 3세 같은 인물이 되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3세를 무대 위에서 봄으로써 우리 내부에 있는 악을 확인하고 그런 다음에는 그 악을 달래고, 억누르고, 씻어내는 효과를 느끼는 것이다. (역자후기)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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