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관행을 따르되, 그 관행의 틀 안에서 침묵하거나 변화를 꾀하는 이들은 엄청나게 전복적인 진리를 알고 있어서, 혹은 그 침묵을 알아줄 미래의 명민한 독자를 기다려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존의 관행과 권위에 정면으로 대결해봐야 소기의 성과도 거두기 어렵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크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대체로 관행을 따르면서, 그 안에서 관행을 비틀어야, 자신의 메시지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권위를 공개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민감한 부분에서 침묵하거나, 생략하거나, 관행을 비트는 방식으로 에둘러 자신이 가진 이견을 표출한다. - P37

그러나 공자가 희망하였던 것은, 소리 없는 작은 행위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논어" 속의 공자는 불필요한 과장(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를 옹호한다. - P60

특히 20세기 후반에 열정적으로 전개된 세계 학계의 사상사 연구 흐름은 천재적이고 뛰어난 사상가로 알려져 있던 과거의 사상가들이 황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난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지적 담론의 소산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명성을 영속시킨 힘도 단순히 그들의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후 전개된 여러 역사적 맥락 때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 P68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 보면, 공자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했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P72

누군가를 진심으로 동정한다는 것은, 그 순간 그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이다. (......)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살리겠다는 뜻인 동시에 너를 살리기 위하여 나도 존재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이다. - P82

그러나 일단 발명된 사랑은 이 세상에 남겨져 현실 속을 살아가야 한다. 그 현실은 사랑의 발명가들이 미처 던지지 않은 다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 P84

즉, 공자에 따르면, 단순히 동정심에 휩싸여 무턱대고 행동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 P85

이러한 질문이 쏟아지는 복잡한 정치 현실 속에서, 동정과 사랑은 더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 혹은 동정심은 처지가 좀 더 나은 사람이 처지가 열악한 사람에게 베푸는 시혜이기에 결국 불평등을 조장하는 감정은 아닐까? 인간의 ‘사랑‘은 이러한 질문들로 가득한 복잡한 정치 현실 속을 헤쳐 나가야 한다. - P85

상대의 정확한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상을 사랑한 대가는 혹독하다. 사랑의 파국은 대개 상대와 자신에 대해서 부정확했던 사랑의 파국이다. - P89

미움의 파국은 대개 상대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 속에서 자신의 막연한 앙심을 투사했던 미움의 파국이다 - P91

"논어"가 전하는 이러한 공자의 페르소나는 실로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삶이라는 이벤트에서 끝내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사람, 과잉을 찬양했던 사람, 노년에 이르러도 그치지 않는 배움이라는 긴 마라톤에 출전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사람. "논어"는 그렇게 분투한 사람에 대한 재현이다. - P105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이나 "논어"의 편집자는 유려한 예식의 집전자로서의 공자만큼이나 현실에서 실패한 선생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다. 결국, 기적과는 인연이 멀었던 사람,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던 사람, 결핍을 느꼈기에 과잉을 꿈꾸었던 사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을 사랑했던 것 같다. - P106

공자의 이 언명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임기응변이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경지를 완수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최후의 경지라는 사실이다. - P124

반면 공자는, 예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에 기반한 이상적 사회를 구상하다 보니, 예의 융통성을 강조하게 된 경우이다. - P126

예를 따르는 일에 관련하여 기존의 전통, 다수의 의견, 그리고 개인의 판단이라는 세 가지 잣대를 제시한 뒤에, 결국 공자는 개인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죠. (......) 우리는 외적인 행동 규범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행동 규범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존재들이라는 거죠. - P137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려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려면, 무능을 넘어 배우는 일 자체에 대해 배우려면, 메타 시선이 필요하다. 공자가 극기복례라고 했을 때, 거기에는 극복 대상이 된 3인칭의 자아 뿐 아니라, 대사오하된 자신을 바라보는 1인칭의 자아가 동시에 있다. 메타 시선을 장착한 사람은 대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발언을 삼가는 사람, 자신이 알 수 없는 큰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 P152

메타 시선이 있는 이는 무지를 그저 선언하기보다, 질문한다.
정교한 질문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훈련된 행위이며, 대상을 메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 P153

메타 시선은 인생을 두 배로 살게 한다. 여행을 하는 동시에 여행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여행 체험을 곱절로 만들듯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동시에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행복감을 곱절로 만들듯이. 그러나 메타 시선을 유지하는 일은 많은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고된 일이기도 하다. (......)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쳐야 하는 전쟁같은 삶. 삶은 고단하기에, 떄로 죽음은 해방감을 가져온다. - P155

공자가 더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집안에서 자기 부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 섬길 것인가 혹은 자기 자식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효성스러운 살마으로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앞서 말한 삶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나누어 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 P178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는 대규모 친족 조직이 지배층에게 그러한 생존의 터전을 제공했고, 지배층들은 국가보다는 자신이 속한 가문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그 가문 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았다. 이러한 친족 질서를 효라는 가치와 예라는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규율해준다면, 제삼자인 국가가 법률을 통해 개입할 여지는 크지 않다. 국가가 강해질 필요가 없다. - P179

공자는 친족 간의 유대와 효가 아직 꽤 중시되던 춘추시대에 살았다. 다른 한편, 그때는 친족 질서가 차츰 약화되고 국가의 힘이 점차 강화되기 시작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 P179

공자에게 그나마 새로운 점이 있었다면 공자는 효의 대상을 대규모 친족 조직이 아니라 소규모 가족 단위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 P180

대규모 친족 조직에 대한 헌신(효)은 국가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효의 대상이 대규모 친족 조직이 아니라 소규모 가족이 되자, 효라는 덕성은 더 이상 통치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대규모 친족 조직과는 달리 소규모 가족은 통치자에게 도전할 만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P181

비국가 영역이 많은 사회적 기능을 떠맡는다는 점에서,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국가는 ‘작은 국가‘임에 틀림없다. 공자의 이상 국가는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덕을, 바람직한 성정을 기를 수 있는 공동체이지, 법이 삶의 국면마다 개입하는 ‘거대한‘ 조직이 아니다. - P182

텍스트에서 이러한 묘사적인 서술을 마주했을 떄, 우리는 그것이 단지 사실을 기술하는 문장인지, 아니면 사실 기술의 형식을 빌려 규범적인 주장을 하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 P186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명령이 행해진 것임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바른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 P189

"논어"에서 행정의 필요를 인정하는 발언은 있어도 명시적으로 관료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찾기는 어렵다. "논어" 주석사의 큰 아이러니는, 바로 행동의 침묵을 설파한 "논어"의 구절이 관료제의 적극적인 운용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재해석되어 갔다는 점이다. - P192

이 아이러니는 공자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와 후대 주석가들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정치공동체의 모습이 달랐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후대 주석가들의 이러한 해석들은 공자가 꿈꾸었던 국가보다는 주석가들이 꿈꾸었던 국가의 모습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 P193

"논어"에 나오는 예에 관련된 여러 구절은, 예의 의미가 인간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몸짓까지 미시적으로 규율하게끔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즉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서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행동거지로 예의 의미가 확장되고 변천하는 과정에서, 예의 ‘규모‘에 관한 한, 거시에서 미시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 P202

이렇게 하면 후대의 모범이 될 만한 모델을 주나라 문화라는 이름으로 재현할 것인가가 공자의 목적이었다. - P213

재현은 실증이 아니다. 재현은 드러내는 동시에 감춘다. - P214

즉 재현 행위는 해당 대상을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음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대상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 더 창의적인 재현은 현실‘을‘을 모사하고자 하는 집착을 버리고, 현실에 ‘대하여‘ 재현하려 든다. - P220

역사서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사료를 얼마나 핍진하게 반복하고 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하여‘ 얼마나 잘 이야기 해주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사료는 필수 불가결한 밑바탕이지만,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 P221

재현의 관점에서 진정으로 뛰어난 정치 행위는, 관련된 민의를 모사하는 것보다는 그 열망을 정책에 얼마나 입체적으로 잘 구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P222

민의가 정치의 명시적인 기반으로 인식되기 전에, 고대 중국의 정치는 무엇을 재현하고자 했나? 중국 고대 정치에서 최초로 재현해야 했던 것은 신의 뜻이었다. (......) 갑골문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해준다. 신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 그렇기에 이 땅의 사람들은 신의 뜻을 재현해야만 했다는 것. 신의 부재를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재현의 세계가 거기에 있다. - P222

"논어" 속의 공자는 신의 뜻을 재현하는 데 골몰하던 제사장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당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한 이들에게 이제 재현해야 할 대상은 신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상상했던 주나라 건국 시기의 문명이었다. 그리고 공자가 보기에 그 찬란했던 고대 문명은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동시에 "논어" 속의 공자는 그 문명을 되살려 공동체에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은 자기에게 결국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전진한다. - P223

따라서 무리해서 유교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들기보다는, 사람들이 어떤 때 어떤 이유로 유교라는 말을 환기하고 사용하려 드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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