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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 - 바깥의 소설 29
나카무라 신이치로 지음, 유숙자 그림 / 현대문학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나카무라 신이치로 그의 나이 70에 발표한
"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 나의 포르노 그래피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자신이 여러 예술 장르를 편력하듯
이 책의 주인공을 통해서 많은 여성과의 성적 유희의 장면을
실감나게 여기저기 빈번하게 펼쳐내고 있다.
차라리 제목을 "나의 포르노 그래피"라고 했으면 더 어울릴것 같다.
저자는 작업의 원동력인 생명에 불길을 가하는 것은 "사랑"과 성욕"이라 말한다.
예술가에만 통용되는 말일까?
음서를 읽는 취미가 있다는 저자에게는 그도 그럴만 하다.
물론 때로는 성적인 해소가 삶에 활력을 주는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육체의 늙음과 죽음이 어떤 내적인 필연성이
서로 얽혀 있는가 라는 자신의 절실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전개해 보고 싶었다.
하는데 절실한 물음은 없다.
사랑도 없다 그저 오락적인 유희에 치우쳐 있는것 같다.
음서를 천여권이나 넘게본 저자는
포르노 그래피라는 단어에 경멸적인 느낌을 갖고 있지 않는다고 하는데
페미니즘은 강간의 원인을 포르노 그래피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일반적인 ,도덕적인 사람들 편에서 볼때
"포르노 그래피" 라는 단어 자체가 경멸감 그 자체일 수 도 있다.
당연히 저자는 포르노라는 단어에 이미 매료되어 있기 때문에
경멸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을수도 있다.
어쩌면 성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섹스의 자유,성의 해방이라 외쳐대는 오늘날의 현실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을까?
어떤 문화권이든 섹스에는 터부의 테두리가 둘러쳐져 있다.
캐밀 파야의 주장처럼
섹스의 자유가 추구되는곳엔 머지 않아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이 뒤따라 올지도 모른다. 즉 가학-피학 성애를 말함이다.
육체를 정신보다 중시하는 오락적 섹스
도덕도 윤리도 동물적인 원초적 충동 앞에선 맥을 추지 못한다.
예술과 섹스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여기저기 흥미로운 정사 장면을 멋들어지게 표현 했고
여성의 풀숲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 했지만 그런 성적인 자극을 주는
장면이 많은데도 읽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지루함 마져 있다.
누군가는 성의 황홀경을 알게되면 그 신비로운 힘이 우주의 오르가즘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가장 신비로운 것중의 하나인 성은 인생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것, 자신의 존재의 근원으로 꿰뚫고 들어 갈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성을 통해서라 말하는 이도 있다.
신비로운 성의 정체, 그저 우리에겐 한순간의 쾌락이 있을뿐이다.
신비감도 존재의 근원도 알 수 없다. 남녀간에 서로를 확인하는 확인작업에
불과한것 일수도 있다.사랑하고 있다고 말이다....
저자의 절실한 물음은 알 수가 없다.
숲은 보았으되 숲속에 나무는 보지 못한 격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