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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는 간소하게
노석미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력적인 음식 에세이가 나왔다. 화가 노석미님의 <먹이는 간소하게>. 제목을 보고 낭군님이랑 나랑 막 웃었다. 퇴근해서 배가 고프다고 헥헥대는 나를 위해 낭군님이 늘 “모이 만들어 놨으니 빨리 와요 ♡” 라고 늘 했기 때문이다. 음식도, 식사도 아닌 먹이, 나에게는 모이. 말이 참 귀엽다.
작가는 도시의 집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 어드메, 시골에서 산지 10년이 넘었다. 그 곳에 집도, 작업실도 있다. 정원도 밭도 빠트리면 서운하다. 거기서 직접 자급자족하여 먹는 채소, 그걸로 만드는 ‘먹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을 썼다.
내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인간인지 안다. 마음으로는 텃밭을 가꾸고, 천천히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삶을 꿈꾼다. 사실은 텃밭은 낭군님...이 모두 가꾸고, 요리도 낭군님이 항상 한다. 직접 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겐 꿈만 같은 이야기. 같이 사는 사람이 날마다 하는데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 언제 하겠다는 맘이 들까?
채소를 가꾸고, 그걸로 밥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글까지 써서, 책을 낸다. 덥고 땀흘리고, 귀찮은 것을 하기 위해서 기꺼이 우선순위로 시간을 낼 수 있을 때는 가능할 것이다. 그런 시간이 언제 나냐고?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마음이 활활 타오를 때겠지.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간 꼭 올 것 같다.
그림하고 짝꿍처럼 알콩달콩 어울리는 글 몇 문장 가져오겠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전을 먹는다. 비 오는 소리와 전을 부칠 때 나는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비 오는 날 전을 부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적 할머니가 ‘시래기국을 끓여준다’고 하셨을 때, “쓰레기에서 무슨 이래 맛있는 냄새가 나노?” 했던 기억을 떠올렸던 구절도 있다.
“말라가고 있는 시래기의 모습은 정말 쓰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것이 과연 음식이 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 시래기를 말리는 귀찮음과 그 보기 흉함을 지나서 시래기가 시래기밥이나 나물, 된장국 등의 음식으로 바뀔 때 ‘아, 어찌 이런 음식이?’ 하는 감동이 몰려온다.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시래기만의 맛과 식감이 있다.”
야채를 채취할 때의 세심한 맘 씀씀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절도 여기 잠깐.
“참취를 채취할 때는 먹기 좋은 부드러운 입만 조금 따야 한다고. 다음에 채취하러 오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참취가 꽃을 피우고 씨를 뿌려 더 많이 번식할 수 있게 뿌리째 뽑으면 안 된다고 꼼꼼이 일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