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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고칠 수 없는 병을 앓는 아내를 위해 밥을 짓기 시작한 사람. 강창래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읽었다. 이 책의 80%는 요리 레시피다. 요리를 모르는 내가 그걸 읽고 있는 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꼭지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레시피 뿐일 때도 있다.
아이쿱에서 무얼 사서 어떻게 양념하고 조리를 해서 음식을 아내 앞에 내어 놓는다. 아내가 두 입만 먹어도 행복해하고, 가슴 조마조마해하며 눈치를 본다. 아내가 ‘맛있다.’ 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단다.
그래서 그런 거였나. 낭군님이 요리를 만들어주고 내가 다른 데 집중하느라 열심히 먹지 않으면 “힝. 힘들게 만들었는데, 맛이 없나 봐!” 서운해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남편의 마음이 ...이해돼서 코 끝이 찡했다. 그러고 나니 30년 넘도록 딸에게 밥을 지어준 엄마 생각이 났다. 힘들게 지은 밥을 먹기 싫다고 유세 부리던 내 생각이 나서. 철은 이렇게 늦게 든다.
요샌 뭔가를 먹을 때, 그걸 만들어 준 사람의 사랑을 먹는다는 생각이 육박해 온다. 이 사람의 사랑이 음식으로 변신했고, 그 사랑이 윤기 나는 피부가, 머리카락이, 손톱이 되는 것이겠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레시피를 담담히 써 내려 갔을 뿐인데 슬프다고 했단다. 되려 작가는 레시피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느껴지길 바랐다는데. 요리에도 기쁨과 슬픔이 묻어나다니. 아침부터 이 책을 다시 읽고 리뷰를 쓰다보니 자꾸 눈물이 난다. 사랑을 넘치도록 받기만 해서 될 일인가. 낭군님이 9월에 여행 마치고 귀국하면 처음으로 내가 음식을 만들어서 주고 싶다. 내가 음식을 만들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걸거다.
가슴을 저몄던 문장 몇 개를 함께 읽자.
“조카는 내가 해준 볶음밥을 무척이나 맛있어했다. 처제도 콩나물국을 잘 먹었고. 나는 식구들이 내는 맛있는 소리를 아내 곁에서 들었다. 음식 만드는 일이 늘 그러다. 힘들어도 맛있게 먹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탁 풀어진다.”
“아내는 대패삼겹살을 겨우 두 점 먹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소한 맛을 음미하면서.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돼지고기를 저렇게 맛나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다시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가슴이 저미게 아팠던 게 겨우 이 주쯤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