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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충돌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대학 때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이 있었다. 그것때문에 데모도 있었고, 언론 지상에서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그때 중국사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그들을 비판할 수 없다. 단 하나의 진실만을 주장하고 가르치는 나라에서 수많은 진실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국정교과서를 통해서 역사를 배운다. 사실은 암기한다. 국사는 가장 따분하고 재미없고 왜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과목이 된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져 있고, 더 이상 연구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없는 것처럼, 결정적인 것으로 국사 교과서는 선조들의 과거를 펼쳐 놓는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들춰보며 나는 그 시절부터 국사에는 잘못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성골과 진골에 대한 설명이었다.
부모가 모두 왕족이면 성골, 부모 중 한쪽이 왕족이 아니면 진골이라고 배웠다. 나는 삼국사기를 찾아보았다. 김춘추, 태종무열왕의 부모는 모두 왕족이다. 왜 태종무열왕부터 진골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국사 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나는 삼국사기에서 내물왕 이전의 신라 역사를 읽었다. 거기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있고 무수한 사실들이 있었다. 이것들이 사실이 아닐 어떤 근거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는 그것을 강요했다. 읽을 필요도 없이 만들었다.
박물관에 가보면 원삼국 시대관이라는 게 있다. 원삼국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물은 있으나 역사는 없는 희한한 시대의 유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삼국사기에서 자기 살을 뭉텅 베어버린 결과다.
이 책 <역사충돌>에서 그러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 학문을 독점하고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국민들을 속인 사람들이 누군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얼토당토 않은 극우 민족주의 사관을 잉태시킨 몰지각한 사람들이 누군가 알게 된다. 역사를 확장시키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현재에 영합하기 위해 과거를 뒤틀은 사람들을 우리는 알게 된다.
모든 사실이 학문의 주제로 다뤄질 때 우리는 숨쉴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된다. 국정 교과서 국사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다양해야 하며, 다양할수록 더 강하고 더 질기고 더 자유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기 위해 하나의 진실, 하나의 진리를 강요하는 세상은 그만 막을 내려야 한다.
<역사충돌>에서 그 거대한 파괴음을 듣는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 한사람을 오랫동안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을 잠깐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일은 사라지기 바란다. 우리 세상도 그렇게 가리기에는 어림없을만큼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