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군림 1
좌백 지음 / 청어람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소 좌백이 놀라운 필력으로 고무림에 연재해온 <천마군림>이 드디어 책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도 매일매일 고무림에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좌백의 글도 재밌지만 글을 읽은 독자들이 달고 있는 댓글도 예술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다.나의 무협읽기는 김용의 영웅문으로 시작했고(역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고, 그래서 역사소설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 그 이상의 재미는 없다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책장에서 발견한 <대도오>라는 특이한 제목의 소설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알린 작품이었다. 시간때우기로 한장 두장 책장을 넘기던 나는 어느덧 중국 변방의 그 시간으로 이동해버렸고 전율을 느끼면서 책을 덮었다. 좌백이라는 이름이 머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순간이었다. 혹자는 이 소설로부터 신무협이라는 장르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황당무계하고 천편일률적인 스토리 전개의 기존 무협소설과 달리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상상력의 합리적인 선을 지켜나가는 소설이 신무협이라는 평도 나돌았다.

좌백은 이런 구분법에 크게 찬성하지는 않는다는 발언을 여러차례 한 적이 있었다. 표사 시리즈로 나온 <독행표>와 <금전표>에서 소위 말하는 구무협적인 가공할 무공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무림향 사이트에서 연재하여 7년간에 걸친 작업을 완료한 <혈기린외전>같은 경우 전략전술적인 면을 다루면서 더욱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점은 이매진에 연재하던 <구룡쟁패> 같은 이야기에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잡은 역사소설로도 손색이 없었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었다. (<구룡쟁패>는 제목을 바꿔 역사소설로 출간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천마군림>에 와서 완전히 달라진다. 이 소설은 신물(神物)과 초막강 무공들의 나열, 과감한 성묘사를 통해 구무협과 신무협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대작이다. 1권과 2권이 이야기의 서두에 불과하여 그동안 대하소설을 쓰지 않았던 좌백의 변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구무협의 단점은 아이템이 우수한 것에 비해서 그 뼈대가 되는 이야기의 서사구조가 빈약한 것에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귀신같은 흡입력을 자랑하는 좌백의 손에서 구무협의 단점은 사라지고 만다. 뒷장이 궁금해서 내 눈이 읽어나가는 속도가 느린 것을 한탄하게 만드는 책이 이 <천마군림>이다.

좌백의 큰 장점은 무공을 깨우치는 순간의 묘사다. 하나의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 발전하는 장면에서 좌백의 묘사를 따라가노라면 다른 차원의 경지가 보인다. 이런 장면은 그동안 열편 가까운 소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가가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무협작가들의 글 중에는 자기 소설을 자기가 복제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좌백의 소설은 그 하나하나가 다 다른 이야기와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동안 급속하게 결말로 내닫는 바람에 말미에서 구조가 흐트러지는 단점을 보인 작품도 있었다. (<혈기린외전>의 경우도 연재분에서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좌백은 그런 부분들을 다시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하장편으로 기획된 <천마군림>에서는 그런 단점이 극복될 것으로 믿는다. 읽어보지도 않고 한국 무협은 별볼 일 없다는 소리하지 말고 한번 펼쳐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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