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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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습니다.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갓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도 싸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폭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해소는 순간일 뿐 더 큰 사회적 제제를 감당해야 합니다. 폭력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식의 해결은 더 부당하죠. 그래서 사람들은 화해를 하거나, 차라리 척을 지거나, 법원에 해결을 요청합니다. 뭐, 이런 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죠. 

 

그러나 이런 온건한(?) 해결책이 항상 사람들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 때때로 갈등이 극심해지면, 간혹 ‘살의’를 느낄 정도로 서로를 증오하기도 하거든요. 제 경우는 비밀인데, 모 영화평론가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영화관에서 매너 없이 구는 사람을 보면 살의를 느끼기도 한다”고 말이죠. 그만큼 살인은 강력한 제제를 받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다행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한 선을 넘지 않지만 말이죠.

 

이 점에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하 『사람들』)의 인물들은 우리와 좀 다릅니다. 나의 증오를 상대방의 죽음으로 갚으려는 사람들이죠. 사연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테드 스번슨은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이미 벌어놓은 돈만으로도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예요. 그런 그가 어느 날 아내 미란다의 불륜 현장을 딱(!) 목격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자신을 금고처럼 여기는 아내가 못마땅하던 테드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릴리와 비밀 게임을 하다 그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릴리의 답이 뜻밖입니다. “당신 부인은 죽여 마땅한 사람 같은데요.”(p.48) 처음 테드는 이게 뭐지 싶었지만, 릴리의 그럴듯한 설득에 결국 넘어갑니다. 오히려 설레는 마음으로 미란다의 살해 계획을 세우죠.


네, 일단 제 눈과 귀를 끌었던 부분은 바로 이들의 우리 것과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세계관입니다. 릴리와 테드는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사람들이거든요. 독서는 일종의 간접체험이고,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안전하게 그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살인을 계획하고 성공할 때마다, 특히 그 사람이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저는 솔직히 좀 짜릿하기까지 했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의 매력을 더하는 건 이런 세계관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소설이 바로 잘 짜인 스릴러였다는 점이 중요했죠. 사실 릴리와 테드가 살인을 결심하고 망치 하나 집어 들고 미란다를 마구잡이로 죽여댔다면, 그건 잔혹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심이 선 뒤부터 상당히 치밀하게 움직입니다. 그게 어느정도냐면, 솔직히 현실에서 써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런 이유로  그래서 많은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주의: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매력적인 세계관, 치밀한 스릴러로써의 면모 외에도 『사람들』엔 많은 매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빼먹으면 안 되는 게 바로 ‘사람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과연 테드의 살의가 과연 테드만 갖고 있었을까요? 그럴리가요.  세상은 사실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겨먹은 게 제각각인 것 같아도, 어떤 결정적인 부분은 공유하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이런 세계에서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죠. 자기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고, 또 계획까지 세울 정도라면, 반대의 경우도 생각했어야 합니다만, 테드는 그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불륜만 해도 그래요. 아내 미란다가 뭔가를 노리고 일부러 들켰을 거란 생각은 애당초 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요. 그런데 이것조차 그럴 듯해요. 젊은 나이에 성공한 남자 사업가들은 어느 순간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거든요. 세상 물정하고 멀어지는 거죠. 그래서 테드는 이 소설의 수많은 피살자 가운데 1번 타자로 죽고 맙니다.

 

누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지면서 이어지는 끝모를 긴장도 빠지면 섭섭합니다. 초반 지략(이런 걸 지략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에서 이긴 미란다나, 10대 중반부터 완전범죄를 저질러온 릴리나 둘 다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상대를 죽이려면 상대방을 넘어서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특히 미란다의 불륜 파트너였던 브래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죠. 때문에 치열한 수싸움 끝에 릴리가 미란다를 죽이던 장면은 2016년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랬어요. 아, 참고로 릴리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목격자 브래드 또한 참으로 쿨(!)하게 죽여버립니다. 이야기는 끝까지 막장의 끈을 놓는 법이 없어요.


사족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그렇게 최종 승자가 된 릴리는 마치 담배를 끊어내듯 살인을 끊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죄의식 같은거 당연히 없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생각지 못한 변수 하나가 그녀의 후두부를 후려칩니다. 사실 릴리는 청소년 시절에 자신을 해꼬지한 남자 몇몇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 뒤편 우물에 그 시신들을 유기했죠. 아, 브래드의 시신도 거기에 묻었네요. 그런데 그 집앞 우물터가 어떤 개발업자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겁니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나죠. 이 내용은 단 두 문단에 실려 있는데, 그 작은 분양으로 결말을 홍수가 난 강의 댐 수문처럼 열어젖힌 겁니다.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결말을 열어놓은 이런 열린 결말의 스릴러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책을 덮는 순간, 2016년 최고의 책이 될 줄 알았어요. 그리고 해가 끝나도록 반전은 없었습니다. ‘올해의 책’에 딸린 부상은 하나도 없지만(한국어판, 영어판 두 권을 샀으니 인세는 좀 더 보태드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올해의 책으로 뽑았습니다. 사실 이 소설이 제발로 꼭대기에 올라간 쪽에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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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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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종료』)를 읽었을 때 떨림이 아직까지 선명합니다. 우리나라의 장르소설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쓰는지 궁금해서 무심결에 꺼내 읽은 책이었는데, 다 읽었을 때 마음은 결코 무심하지가 않았어요. 매끈한 문장에, 플롯의 이음새도 정말 좋았는데, 무엇보다도 완벽한 반전이 이 소설을 강렬하게 만들었습니다. 좀 오버하자면, 나는 이 소설이 우리말로 쓰였다는 게 신기했을 정도였죠. 따로 말한 적은 없지만, 작가에게 혼잣말을 건넸더랬다. ‘다음 작품 쓰기 좀 부담스러우시겠어요.’ 후속작인 『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탐정단』)는 아마 작가도 외면할 수 없었을 그 부담의 결과물인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마치 작정한 듯 『종료』와는 다른 이야기를 쓴 것 같습니다. 작품의 배경과 톤,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 모두가 다르죠. 조금 냉소적이긴 하지만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 채율, 비롯해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선암여고 미스터리 탐정단’ 단원들. 이건 누가 봐도 아무리 봐도 ‘코지 미스터리’가 분명했어요. 살해당한 어머니를 잊지 못한 주인공에게 어머니가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의 『종료』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를 수밖에 없었죠. 저는 ‘자기복제를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인가?’하고 생각했어요. 이 어리둥절한 변신을 어떻게 여겨야 할지 몰라 조금은 혼란스러운 채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쌍둥이이자 천재인 오빠만 챙기는 엄마에게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채율은 외고 시험에 응시하지만 ‘탈락자 중 1등’이라는 성적으로 탈락하고, 선암여고에 진학합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는 학생이죠. 선암여고는 그저 그런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고, 그래서 채율에게는 유학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채율이 변태 같은 괴한에게 팔을 물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선암여고 미스터리 탐정단’이라는 아이들이 채율을 찾아오죠. 탐정단을 처음 만난 채율은 속으로 비웃지만, 사건은 의지와 다르게 굴러갑니다. 어찌어찌 ‘고문’ 직함을 얻게 되었고, 이후 떠밀리듯 수사에 참가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이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이 소설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가 ‘성장담’이었다는 점입니다. 작품 초반 채율에게 탐정단, 나아가 학생들은 그저 ‘스쳐 지나는 바람’일 뿐이었죠. 그러나 채율은 사실 냉소로 반항하기만 했을 뿐,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할 줄은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자퇴 후 유학도 실은 엄마가 짜놓은 큰 그림에 불과했고, 채율의 목표 또한 그런 엄마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었죠. 그러나 냉소는 결국 순응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결국 자기 갈 길을 스스로 결정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과 어울리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점도 깨닫게 되죠. 


더욱 재미있는 건, 추리 과정이 재미를 더하는 과정일뿐 아니라 채율을 성장시키는 요인었다는 점입니다. 학교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채율은 자기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부대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못마땅했지만, 이 과정에서 어떤 쾌감을 느끼게 되죠. 또한 추리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해요. 추리의 끝자락에 놓인 부조리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건, 단지 그 진실이 품은 속성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결국 추리는 채율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었던 거죠. 


추리과정이 탄탄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는 사건 해결을 위한 열쇠를 뚝 떨어뜨리는 법이 없어요. 그렇다고 고등학생 수준 이상의 추리 과정을 요구하지도 않죠. 딱 또래가 찾을 만한 단서들을 내놓고,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찾아내고 추리하죠. ‘코지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리얼리티의 관점에서도 분명 탄탄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모든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여고생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여과 없이 드러내는 부분이 그랬죠(“여자들은 왜 그렇게 복잡할까. 화가 나면 화가 났다고, 분명하게 말하면 간단할 일이잖아.” 197). ‘오빠’ 소리만 들으면 단서를 술술 내어놓는 미술관 큐레이터는 또 어떤가요. 작품 전체를 보면 작은 허점이었던 건 맞지만, 이 소설의 완성도가 높았던 탓에 더 눈에 띄었네요. 다음 작품에선 어떻게 그려지는지 한번 두고 볼 듯합니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의 송시우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 추리소설의 성향도 다채롭게 변했고 질도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쉽사리 납득하진 못했지만, 『탐정단』 덕분에 납득할 수 있었어요(아, 작가의 전작이었던 『종료』를 읽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네요). 여하튼 한국 작품을 더 많이 기다리게 될 듯합니다. 작가의 후속작도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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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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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고 이야기합니다. 때문에 많은 범죄소설에서 수사의 성패는 이 흔적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수사관들은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고, 우리는 이 과정을 이야기의 중요한 축으로 받아들이죠. 벽에 막힌 수사관은 기록으로 자주 돌아가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과학’입니다. 단 한 건의 살인사건만 벌어져도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은 별별 기술들이 총동원됩니다. 문제는 이런 기술들을 동원하더라도 범인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에요(범죄소설이 괜히 두꺼운 게 아니죠). 심지어 실제 세계에서는 미제로 남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가끔 궁금했습니다. ‘이런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형사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지?’ 유전자 감식이 쓰이지 않았던 시절에는 수많은 사건을 미제로 남겨두어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 이야기죠. 그렇다면 그보다 더 옛날에는? 그 시절 형사사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저는 솔직히 그 시절의 수사라고 하면 이 한 마디만 떠오르더군요. 바로 ‘고문’이었습니다.

스페인 출신 공학자이자 소설가인 안토니오 가리도가 쓴 『시체 읽는 남자』는 법의학서인 『세원집록(洗寃集錄)』의 저자 송자의 삶을 다시 구성한 ‘팩션’입니다. 소설을 읽기 전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띠지에 쓰여 있는 ‘세계 최초의 법의학서의 저자’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인물을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검색을 통해 송자가 송나라 시절의 인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송나라 시대의 법의학이라니…. 솔직히 제 상식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세계사 시간에 외우기를 송나라 ‘문치주의’의 국가였고, 이런 나라에서는 과학 같은 실용 학문은 천대받기 마련이거든요(우리 역사의 문치주의 대표주자 조선도 그랬다죠). 이런 이유로 의구심과 호기심이 각각 절반씩 제 마음을 차지했습니다.

소설은 남송의 수도인 린안(오늘날의 항저우)의 국자학에서 공부하다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와 형의 농사를 돕는 송자와 함께 시작됩니다. 형은 날마다 그를 부려먹지 못해 안달이고, 심지어 송자를 자주 때리기까지 합니다. 부모님 또한 그런 형의 위세에 눌려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죠. 송자는 날마다 할아버지의 재단 앞에서 린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송자에게 고향은 지옥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자는 밭을 갈다 목이 잘린 머리를 발견하고 이를 관청에 신고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수사의 양상이 제 생각과 사뭇 달랐습니다. 시체에 있는 다양한 단서를 토대로 용의자를 추려내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죠. 물론 제가 생각했던 고문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이끄는 펭판관은 상처와 주변 상황 등 다양한 단서를 이용해 범인을 지목하며, 송자 또한 유학 시절에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크게 공헌하게 되죠. 소설의 시작이 강력했던 건 건 수사에 대한 제 편견을 뒤집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동시에, 흥미로운 범죄소설이라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었죠.

첫 수사에서 큰 공을 세운 송자는, 그러나 그 공헌 때문에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또한 갑작스런 사고 때문에 몸이 아픈 셋째 동생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죽음을 맞게 되었죠. 빈털터리가 된 그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쫓기듯 린안을 향해 출발합니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돌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강도와 관원을 겨우겨우 피해 도착할 수 있었죠. 힘겹게 도착한 린안에서도 적지 않은 시련이 송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소설은 송자의 생존기를 쓰듯, 그 과정을 긴 분량에 걸쳐 묘사합니다.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시체 읽는 남자』 ‘범죄소설’이라는 정체성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생존을 위한 송자의 몸부림은 그 자체로 강렬한 페이소스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송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빈민가의 현실을 정교한 묘사로 전하고 있어요. 이 대목을 읽을 땐 <레미제라블>의 빈민가를 볼 때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어요. 이렇듯 『시체 읽는 남자』는 ‘수사관’ 송자의 면모를 그리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송자를 함께 보여줍니다. 『시체 읽는 남자』는 결국 한 편의 ‘생존기’이자 ‘시대극’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요.

그렇다고 작가가 장르적 쾌감이 덜한 것은 아닙니다. 별별 위기를 다 극복한 송자에게 남은 마지막 관문은 결국 ‘살인사건’입니다. 끝내 검시관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송자는 황제의 명을 받아 살인 사건 수사에 투입되지만, 그가 활용할 수 있는 단서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어렵게 어렵게 실체에 다가가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 진실이 그를 가만히 놔둘 리 없죠. 진실과 마주한 그는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맞게 되고, 스스로의 기지 또는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범죄소설 특유의 쾌감을 전해주죠.

단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마음에 걸린 부분은 만듦새였어요. 절정부에 다다르기 전, 송자의 시련은 개연성이 좀 약한 편입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송자가 내리는 결정 또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죠. 그러나 범죄의 영역에서 이러한 약점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장르물로써 기본은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셔도 좋습니다. 나아가 ‘시대극’, ‘생존기’로써도 모자람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때문에 색다른 걸 찾는 범죄소설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 한 작품인 듯합니다. 익숙한 쾌감과 색다른 경험을 함께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의 리뷰 이벤트로 제공된 『시체 읽는 남자』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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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놓지 마
미셸 뷔시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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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 벨리옹과 리안 벨리옹 부부는 여섯 살 난 딸 조세파(소파)와 함께 평화로운 휴양지 레위니옹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마냥 여유로울 것 같았던 휴가였지만, 아내 리안의 실종과 함께 평화는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마샬은 리안의 실종을 제일 먼저 지역 헌병대에 알렸지만, 이내 모든 정황은 마샬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조사는 비교적 순조로웠습니다. 마샬도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죠. 그러나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고, 이후 마샬이 탈출하면서 중단되고 맙니다. 이제 남은 건 마샬을 빠른 시간 안에 찾아내는 거죠.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뷔시가 쓴 장편소설 『내 손 놓지 마』는 이렇듯 추격에 관한 소설입니다. 살인 용의자인 마샬과 그를 쫓는 경찰(헌병)로 갈등의 구도가 뚜렷하죠. 그리고 사실 이 과정만으로도 『내 손 놓지 마』는 제게 충분히 좋은 소설로 남을 만했습니다. 헌병대는 마샬 벨리옹을 검거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하고, 마샬은 그들의 포위망을 최선을 다해 뚫고 탈출하죠. 이 과정에 대한 세부 묘사는 압권이었습니다. 특히나 탈출 과정에서 핸디캡이 될 수밖에 없는 딸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손 놓지 마』는 ‘재미있는 소설’ 이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계기는 마샬이 보여주는 양면성이었습니다. 사실 초반부에서 마샬은 당장 잡아넣어야 할 위태로운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두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고, 그 와중에 여섯 살 딸을 데리고 도망쳐버렸으니까요. 딸의 시점에서도 마샬은 알 수 없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독자에게는 더욱 위험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읽는 내내 당장 ‘이러다 딸까지 죽는 거 아냐?’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

(보기에 따라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샬에 대한 의심이 합당한 것이었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게을러빠진 헌병대 상사 크리스토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하고, 헌병이 파악한 진실과 반대되는 증언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하죠. 마샬 또한 헌병의 추격 이외에 또 다른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시작합니다. 단순한 줄만 알았던 갈등선은 어느 시점부터 겉잡을 수없이 꼬여가기 시작하죠.

『내 손 놓지 마』가 좋은 범죄소설로 남은 건, 미스터리의 깊이 때문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의뭉한 듯한 마샬을 비롯해 그런 아빠 앞에서 생존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딸 소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리안, 그리고 아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범죄자. 여기에 마샬을 필사적으로 검거하려는 헌병(아자와 크리스토)까지 한데 어우러지면서 의문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 인물들이 맞춰가는 사건의 퍼즐은 현란함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내 손 놓지 마』의 매력은 플롯의 현란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미스터리가 날고 긴다 해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력 없이 없다면 저는 그 소설을 마냥 좋게 보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이런 소설일수록 인물을 옭아매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죠. 닳고 닳은 형사보다는 가령 위험에 빠진 딸을 찾아 나서는 아빠에게 더욱 감정을 투사할 수 있듯이 말이죠. 『내 손 놓지 마』는 이 측면에서도 정말로 훌륭합니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 하나하나가 각자의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죠. 심지어 만사를 귀찮아할 줄만 아는 헌병대 상사 크리스토마저 뚜렷한 동기를 쥐고 행동하면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데 일조합니다. 자칫 억지가 될 뻔했던 현란한 퍼즐들은 인물들의 간절함과 함께 ‘사람 사는 이야기’로 거듭나는 데 성공하죠.

범죄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잘 읽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미덕입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문장을 쉽게 쓰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언젠가부터 인물에게 얼마나 깊게 빠져드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화려한 트릭이라 해도, 그걸 사람이 그걸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쥐었던 건 작가가 인물들에게 동기를 적절히 부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내 손 놓지 마』는 꽤나 오랫동안 잊지 못할 소설로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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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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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킨슨병 때문에 운영하던 병원 문을 닫아야 했던 조 올로클린 박사는 친구의 부탁으로 대학 강의에 나섭니다. 아픈 몸으로 강의를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그였지만 첫 강의는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순간,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경찰에게 자살 협상을 부탁받은 선배 브루노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올로클린 박사에게 일을 맡긴 겁니다. 마뜩잖은 일이었지만 촉박했다고 채근하는 경찰 때문에 그는 다리로 향합니다. 끝내 박사는 협상에 실패했고, 다리 위에 매달려 있던 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후 이 사건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박사와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섭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합니다. 일단 단순 자살로 처리된 첫 번째 희생자가 실은 살해당해야 했다는 것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후에도 곳곳에 지뢰가 가득합니다. 범인은 자신을 숨기는 데 매우 능하고, 물리적인 흔적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그가 지닌 특수한 신분이 그걸 가능하게 하죠.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사와 경찰은 범인의 정체를 조금씩 밝혀가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더 큰 위기와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죠. 


사람들은 ‘청와대 게이트’로 떠들썩한 요즘 시국을 흔히 ‘소설 같다’, ‘영화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실 소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그다지 닮지 않았어요.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 반드시 원인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체호프의 총’이 그걸 잘 설명하고 있죠). 잘 쓴 소설, 잘 만든 영화는 사실 이런 종류의 밑도 끝도 없는 비상식과는 거리가 멀죠. 소설이 이 규칙을 어기는 순간, 독자들은 강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마이클 로보텀의 소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일견 체호프의 총을 여기저기 잘 심어놓은 소설입니다. 희생자들이 살해를 당하는 과정, 경찰이 범인을 추적하는 동선,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는 계기까지 어느 하나 그럴듯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그만큼 설득력 또한 강하죠. 그러나 저는 결정적 한순간 때문에 이 책을 ‘마냥 좋은 소설’로 부르기가 꺼려집니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 올로클린 박사가 끝까지 발을 빼지 않는 이유가 그 순간입니다. 


범인의 범행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수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범인은 끊임없이 희생자를 찾아내고 살해하거나 살해하기 직전까지 몰아가는 데 성공합니다. 이런 상황을 뒤집어보면, 소설 속 누군가는 반드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합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어떤 한 범죄에 실패한 이후, 희생양을 찾아낼 거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를 사로잡았어요. 문제는 너무나 빤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이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이 위기를 벗어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연쇄살인’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순간 발을 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박사는 수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얻을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 근거로 몇몇 설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일단 ‘파킨슨병’이라는 설정이 그렇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치병을 앓게 된 그가,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수사를 택했을 가능성 말이죠. 몇몇 대목에서 주인공의 질병이 자존심을 깎아 먹긴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게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범인과 심리 싸움에 몰두하면서도, 자신의 자괴감을 그다지 실감 나게 그리지 않아 보입니다. 아내와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이런저런 갈등은 너무나 사소해 보일 정도로 조 올로클린은 너무나 원만한 삶을 이어가고 있어요.


절정부에서 이어지는 위기는 그의 ‘객기’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로 화가 많이 났어요. 네가 결정만 했으면 괜찮았잖아! 물론 그의 선택 없이는 소설 자체가 성립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그의 마음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렸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인공에게 화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독서에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말씀드린 대목에서 책장을 정말 빠르게 넘기긴 했지만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제게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쓰다 만듯한’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리 사놓은 후속작 『내 것이었던 소녀』는 이런 감정 소모 없이 읽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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