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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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습니다.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갓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도 싸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폭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해소는 순간일 뿐 더 큰 사회적 제제를 감당해야 합니다. 폭력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식의 해결은 더 부당하죠. 그래서 사람들은 화해를 하거나, 차라리 척을 지거나, 법원에 해결을 요청합니다. 뭐, 이런 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죠. 

 

그러나 이런 온건한(?) 해결책이 항상 사람들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 때때로 갈등이 극심해지면, 간혹 ‘살의’를 느낄 정도로 서로를 증오하기도 하거든요. 제 경우는 비밀인데, 모 영화평론가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영화관에서 매너 없이 구는 사람을 보면 살의를 느끼기도 한다”고 말이죠. 그만큼 살인은 강력한 제제를 받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다행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한 선을 넘지 않지만 말이죠.

 

이 점에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하 『사람들』)의 인물들은 우리와 좀 다릅니다. 나의 증오를 상대방의 죽음으로 갚으려는 사람들이죠. 사연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테드 스번슨은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이미 벌어놓은 돈만으로도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예요. 그런 그가 어느 날 아내 미란다의 불륜 현장을 딱(!) 목격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자신을 금고처럼 여기는 아내가 못마땅하던 테드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릴리와 비밀 게임을 하다 그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릴리의 답이 뜻밖입니다. “당신 부인은 죽여 마땅한 사람 같은데요.”(p.48) 처음 테드는 이게 뭐지 싶었지만, 릴리의 그럴듯한 설득에 결국 넘어갑니다. 오히려 설레는 마음으로 미란다의 살해 계획을 세우죠.


네, 일단 제 눈과 귀를 끌었던 부분은 바로 이들의 우리 것과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세계관입니다. 릴리와 테드는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사람들이거든요. 독서는 일종의 간접체험이고,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안전하게 그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살인을 계획하고 성공할 때마다, 특히 그 사람이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저는 솔직히 좀 짜릿하기까지 했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의 매력을 더하는 건 이런 세계관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소설이 바로 잘 짜인 스릴러였다는 점이 중요했죠. 사실 릴리와 테드가 살인을 결심하고 망치 하나 집어 들고 미란다를 마구잡이로 죽여댔다면, 그건 잔혹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심이 선 뒤부터 상당히 치밀하게 움직입니다. 그게 어느정도냐면, 솔직히 현실에서 써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런 이유로  그래서 많은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주의: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매력적인 세계관, 치밀한 스릴러로써의 면모 외에도 『사람들』엔 많은 매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빼먹으면 안 되는 게 바로 ‘사람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과연 테드의 살의가 과연 테드만 갖고 있었을까요? 그럴리가요.  세상은 사실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겨먹은 게 제각각인 것 같아도, 어떤 결정적인 부분은 공유하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이런 세계에서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죠. 자기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고, 또 계획까지 세울 정도라면, 반대의 경우도 생각했어야 합니다만, 테드는 그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불륜만 해도 그래요. 아내 미란다가 뭔가를 노리고 일부러 들켰을 거란 생각은 애당초 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요. 그런데 이것조차 그럴 듯해요. 젊은 나이에 성공한 남자 사업가들은 어느 순간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거든요. 세상 물정하고 멀어지는 거죠. 그래서 테드는 이 소설의 수많은 피살자 가운데 1번 타자로 죽고 맙니다.

 

누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지면서 이어지는 끝모를 긴장도 빠지면 섭섭합니다. 초반 지략(이런 걸 지략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에서 이긴 미란다나, 10대 중반부터 완전범죄를 저질러온 릴리나 둘 다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상대를 죽이려면 상대방을 넘어서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특히 미란다의 불륜 파트너였던 브래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죠. 때문에 치열한 수싸움 끝에 릴리가 미란다를 죽이던 장면은 2016년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랬어요. 아, 참고로 릴리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목격자 브래드 또한 참으로 쿨(!)하게 죽여버립니다. 이야기는 끝까지 막장의 끈을 놓는 법이 없어요.


사족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그렇게 최종 승자가 된 릴리는 마치 담배를 끊어내듯 살인을 끊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죄의식 같은거 당연히 없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생각지 못한 변수 하나가 그녀의 후두부를 후려칩니다. 사실 릴리는 청소년 시절에 자신을 해꼬지한 남자 몇몇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 뒤편 우물에 그 시신들을 유기했죠. 아, 브래드의 시신도 거기에 묻었네요. 그런데 그 집앞 우물터가 어떤 개발업자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겁니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나죠. 이 내용은 단 두 문단에 실려 있는데, 그 작은 분양으로 결말을 홍수가 난 강의 댐 수문처럼 열어젖힌 겁니다.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결말을 열어놓은 이런 열린 결말의 스릴러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책을 덮는 순간, 2016년 최고의 책이 될 줄 알았어요. 그리고 해가 끝나도록 반전은 없었습니다. ‘올해의 책’에 딸린 부상은 하나도 없지만(한국어판, 영어판 두 권을 샀으니 인세는 좀 더 보태드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올해의 책으로 뽑았습니다. 사실 이 소설이 제발로 꼭대기에 올라간 쪽에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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