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쓰다 슈테판 츠바이크 평전시리즈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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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나는 니체라는 바다 한가운데 빠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른손에는 망치를 들고서 세상의 가치를 모두 부숴버리는(써놓고 나니 얼굴을 들 수가 없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부끄럽긴 하지만, 그 또한 내 일부였다는 걸 애써 지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때 나는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우울감이 절정에 다다랐고, 니체의 철학은 최선의 돌파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500년 가까이 세계를 억압해온 객관적 질서를 전복하는 차이의 철학, 운명을 긍정하며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내는 초인(위버멘쉬)의 철학. 나를 홀려버린 니체의 철학이었다. 극에 달했던 정신적 방황을 니체의 철학과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완역되었던 니체 전집(책세상 판)을 사서 경전처럼 읽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 그동안 우울감은 현대 의학이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극복했고 방황도 그럭저럭 잠재웠지만, 여기에 니체 철학의 기여도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다. 세상 일 때문에 철학을 진지하게 파고들 겨를이 없었고, 니체가 남긴 흔적도 세월의 바람과 함께 희미해졌으니까. 그런 와중에 『니체를 쓰다』 서평을 읽었고, 문득 니체를 파고들었던 그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니체는 어떻게 다가올지,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들 모두는 확고하고 분명한 걸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길을 나아가는 데 반해, 니체는 항상 쫓기면서 자신도 모르는 길로 접어들곤 했다. 이런 이유로 니체의 인식의 역사는(돈 후안의 모험처럼) 완전히 극적으로 형성되었고, 위험하고 놀라운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끊임없는 흥분의 도가니속에서 돌발적 급전으로부터 더 높은 단계로 뛰어 오르다가, 결국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버리는 하나의 비극이었다.” p.57

『니체를 쓰다』에서 다시 만난 니체는 여전히 서양 세계를 규정지은 질서를 깨부수며 새로움을 탐닉하던 철학자였으며, 그의 철학은 언뜻 규격 바깥의 세계(혹은 사람)를 무시하면서 생겨나는 모순을 지적한 『평균의 종말』의 메시지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철학에 다시 한번 주목할 수도 있었겠으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인식이라는 것에서 “맹안盲眼은 오류가 아니라 비겁”이고, 선한 마음은 범죄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치와 아픔을 고려하고, 알몸의 절규나 추함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마지막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종 한계까지 가지 않는 진리, 철저함이 결여된 진실성은 윤리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니체의 엄격함은 태만이나 소심한 사고로부터 결단을 위한 성스러운 의무를 소홀히 하던 모든 자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p.72

적어도 이 책에서 내가 읽은 니체는 더 나은 것, 더 높고 위대한 것을 갈망하는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 그가 추구했던 차이는 질서에서 소외된 약자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철학은 위대함을 위해 투쟁하는 개인(초인)을 위한 것이었을 뿐, 공존하는 세계를 지지하지 않는다. 니체가 ‘파시스트’였다는 일부 평론가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츠바이크가 그린 니체(와 그의 철학)를 강자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철학을 예술의 테두리에 가둬두었다면, 이 책을 읽으며 20대 시절에 보냈던 공감을 온전히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이 예술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되었고, 초인이 될 수 없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삶 또한 긍정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다른 나는 “선한 마음은 범죄”가 되고, “수치나 아픔을 고려하고” “추함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마지막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는” 그의 철학에서 더는 이정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니체를 쓰다』 속 니체와 그의 철학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격정적인 문체를 만나,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 어느 책보다 또렷한 니체를 나에게 데려다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또렷하게 내 앞에 나타난 니체의 초인 때문에 나는 니체에게서 여러 발짝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초인이 되기에는 버거운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니체를 쓰다』는 좋은 책이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내가 변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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