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독 생활 -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타이키 라이토 핌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6년 4월
평점 :
모든 애독가가 애서가인 것은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애서가는 애독가일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지 않을까? 정말 필요한 책을 제외하면 대부분 빌려 보던 이들이 문득 짧은 대출 기간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렇게 책을 한권 두권 사다 보니 아니 이게 웬걸, 사고 싶은 책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깨달음을 득한 후로는 자기 읽는 속도는 안중에 없이 책을 사들이면서 결국 집은 어느새 책 창고가 되어버리는 과정. 내가 애서가가 된 과정인데, 아마 다른 애서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거쳐왔으리라.
⠀
재미있는 것은 애독가에서 애서가가 되는 과정에서 책의 성격이 변한다는 것이다. 초보 애독가 시절, 나에게 책은 ‘읽으면 좋은 것’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애독가 경력을 나름 적지 않게 쌓은 지금은, 다음 달 장바구니에 골라 넣어야 할 고민거리,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훌륭한 구경거리, 내 지적 성향을 보여주는 수집품, 읽은 책에 대해서는 지적 허영을 뽐내게 해주는 자랑거리, (사실과 달리) 박식함을 전시하는 인테리어까지, 책은 단순히 정보 전달을 아득히 넘어서는, 천하무적 만능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
다만 하나 결정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내 덕질을 소재로 함께 떠들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적독 생활』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냉큼 주문한 것도 그래서였다. 책 수다에 대한 갈망을 이렇게라도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어 소구 포인트를 정확히 채워준 것이다. 반갑지 않을 수가 있을까.
⠀
특히 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갔던 대목을 요약해보면 이런 것들이다. 필요한 책만 얼른 사서 나오겠다는 마음을 아무리 굳게 먹어도 그럴 수 없는 우리 종족의 (아마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버릇, 필요한 책을 집에 가지고 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책에서는 이 감정을 낭만으로 표현했지만, 크게 다른 감정은 아닐듯), 과제 때문에 꼭 읽어야 할 책은 이상하게도 꼭 미뤄두는 습관,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새로 읽을 책을 고르는 데 몇 날 며칠이 걸리는 우유부단함(모든 책이 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사야 할 책이 늘어나는 탐욕(?)까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내 습관을 신묘한 무당처럼 지적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가지지 않아도 될 양심의 가책과 공감의 사이를 오가느라 무척 바쁘면서도 무척 즐거웠다는 이야기.
⠀
단 하나,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을 쓴 독자 집단이 그렇게 쌓아놓은 책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남이 읽는 책, 남이 채워놓은 책장이 그렇게 궁금하고, 또 엿보는 과정이 즐거운 사람인데 그 과정이 생략되어서 무척 아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내 거실 책장을 구역별로 나눠 보여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한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는 것만큼 민망한 일은 없으니까. 혹시 궁금한 분이 계신다면, 댓글에 남겨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서평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