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박묵시록 카이지 22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다닐 때 들은 경제학 수업이라고는 정운영 선생의 정치경제학뿐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에, 수업 내용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목폴라와 재킷을 입은 정운영 선생이, 길쭉한 다리로 왔다갔다 하며 학생들을 쳐다보던 멋진 모습만 기억난다(아~창피해). 그렇게 얄팍한 머리속이지만 그래도 내가 부여잡고 있는 게 있다면, 자본주의를 수식하는 '천민'이라는 단어는, 제 몸 편한대로 아무렇게나 뒹구는,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배만 채우면 된다는, 돈만 된다면 시키는 대로 벌벌 기는 '의식없음'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천민성의 정수가 바로 도박이다. 그 속에는 어떠한 땀도, 사고도 없다. 모든 신경회로는 판돈을 따내는 방법으로 집중되고, 큰 돈을 순식간에 따서 인생 역전을 해보겠다는 조바심은 winner takes all의 극단적 자본주의를 지키는 가드가 된다.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움트고 있는 지점도 그곳이다. 주인공 카이지가 하는 것은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목숨이 달린 서바이벌 게임이다. 도박에서 잃는 것이 돈이 아니라 목숨이므로, 카이지가 참가하고 있는 도박은 삶 그 자체이고, 그 삶은 철저히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천민적 자본주의에 속해있다. 이곳에서 감상은 금물이다. '기도에 의존하게 되면 그 인간도 볼장 다 봤다는 뜻'이니까 그런 것은 집어치워야 한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짐승같은 본성에 대한 통찰과 철두철미한 전투자세다. 그런 세계에 있다.
우리 삶이란. 이 속에서 일군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어영부영 우왕좌왕하고, 또 다른 일군은 약육강식의 논리로 한 몫 쥐기 위해 (앞서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포함한) 타인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두 무리의 사람들이 사생결단의 전쟁같은 도박을 벌이는 것을, 단순히 재미로 보고 즐김으로써 권태를 이기려는 악마같은 자들이 있다. 카이지는, 두 손을 놓고 아무것도 안하면서 세상이 뭔가 바뀌기만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를 죽임으로써 자신은 살겠다는 악다구니를 부리지도 않는다. 다만,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논리적으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함으로써 그도 구원하고, 타인도 구원하는 길을 모색하려고 한다. 그것이 묵시록의 유일한 희망이지만, 카이지라는 인간 자체가 쓰레기에 가깝고 그 구원의 길도 속임수와 사기로 점철되어 있다.
자, 이제 어떻게 살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