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PORTSAC 2011 spring & summer style1 スタ-ダスト
寶島社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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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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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의 철학적 의미는
토마스 네이글 지음, 김형철 옮김 / 서광사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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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를 우리는 늘 하고 있지만, 기실 그것을 인지하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생각들이 단순히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한 단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철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누구의 이론이라던가 남의 어려운 생각을 내것으로 만들려는 억지스러운 작업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우리의 생각들을 정리해 놓은 일련의 정리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실로 책의 내용은 너무 간단해서, 이것이 무슨 의미를 자신에게 주는지 당장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두번이상 읽었는데, 읽는데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읽을 때 마다 달라진 내 사고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사고의 지평이 넓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철학적 사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해소되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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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VS 프로이트 C.S. 루이스 연구서
아맨드 M. 니콜라이 지음, 홍승기 옮김 / 홍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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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좋아하던 친구에게 나중에 유명해지면 너를 찾겠노라고 약속했던 어린 날이 있다. 그때에 자아 존중감이 높았다기 보단, 언젠가 무언가를 해내야 겠다는 내 욕심이 내가 그말을 하게 된 동기가 아니었나 싶다.
여기 프로이트가 그런말을 습관처럼 내 뱉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한 그 시절은 내게 아주 미성숙하게 들리는데, 프로이트도 그 미성숙한 일을 자아가 자란 훗날에도 저질렀다는 것이. 물론, 그는 결국 소원성취를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공통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을 누군들 안 하고 살겠느냐만은 그들의 명예욕은 대단한 것이어서 남의 출세나 성공을 보면 속상해 하는 감정을 가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내향적인 성향을 가졌다. 그들은 어린시절에트라우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거듭남이다.
행복이란 카테고리에, 행복을 진정 방해한 것은 그들의 욕망이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루이스에 의하면 인정받기로 갈망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마비할 수 있는 수단을 허락하신다. 치유받은 존재는 모든 고통과 함께 즐거움도 누린다. 모든 야망을 포기할때, 상처 받아 있는 존재는 안식할수 있다.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진리가 나이 들수록 와 닿는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어느 하나는 포기를 해야 이것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손은 언제나 둘 뿐이다.
이 두손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어서 우린 무엇 하나를 놓아야만 진정 다른 것을 소유할 수 있다.
버린 다는 것은 가슴 아프다. 그렇지만,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건 버려야 한다.

영적걸림돌인 욕망(그가 말한대로)를 버리는 것은, 내가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고통을 다른 사람도 겪었다는 것은, 깊은 위로를 준다.
오늘 밤은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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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하나님
대천덕 지음 / 홍성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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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경직된 시각들이 하나 하나 무너지고 있다.

대 신부님의 글을 읽으면서 차근차근히 성서 적인 교회의 모습이 되길 저절로 기도하게 된다.

인천에 산곡감리교회가 있는데, 난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최근에 바뀐 주보에는 목회철학이 적혀있는데, 가장 맘에 들어하는 구절은 이것이다.
"예언자적 목회보다 제사장적인 목회"
이 말이 와 닿는 것은, 아마 종교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 만이 제대로 분별한답시고 성도의 신앙을 억압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일것이다.

물론, 예언이 잘못된 것은 아니고, 나도 너무 갖고 싶은 은사중에 하나이지만, 영분별하는 사람들의 분별이 없는 예언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 동안, 감리교회라는 틀에 너무 박혀있던 내 자신을 돌아본다.
신실하게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과연, 세상의 재리에서 자유할 수 있고, 세상의 돌아가는 현실속에서 성서적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것과 연관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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