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통신 - 유쾌한 지식여행자가 본 러시아의 겉과 속 지식여행자 13
요네하라 마리 지음, 박연정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읽은 러시아 관련 책들은 대부분 논문에 가까운 학술 서적이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현대사를 다룬 책이라 해도 마치 몇 백년 전 역사책을 읽듯이 멀게만 느껴졌다. 러시아어과인지라 실제로 10개월 정도 모스크바에서 언어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때 받은 러시아인과 러시아 문화는 책에서 읽고 상상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다녀온 것은 2007~2008년 고작 10개월이지만 지은이는 러시아 통역사로서 1980~90년대, 이후에도 셀 수 없이 많이 러시아에 다녀온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직접 체험한 경험이 이 책에 녹아들어 러시아가 낯설지 않게, 생생하게 다가온다. 러시아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우선 러시아인들이 얼마나 보드카를 사랑하는지 보드카와 얽힌 일화와 재담을 지은이는 소개한다. 재미있는 재담이 무척 많아 공책에 몇 가지 옮겨 적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 한 가지 옮겨보면,  

 "절주령 시행 후 이혼이 급격히 증가했다. 거의 10년 만에 맨 정신으로 부인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다."                                                                      

                                                                                                          - 본문 88쪽 

 하지만 이들의 지나친 보드카 사랑이(절주령 시행 즈음에도 러시아인들의 25%이상이 알코올 중독이었다고 한다) 웃고 지나칠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러시아 현실이 각박하고 살기 힘들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니까. 요네하라 마리는 이런 점을 꼬집으며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탈바꿈하면서 러시아인들이 겪었던 아픔들, 그리고 그 아픔을 승화시키는 낙천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택시기사의 입에서, 러시아로 귀화한 북한 학자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현대 사회(1980,90년대)가 어떤 진통을 겪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지은이는 러·일 양국 회담이 있을 때마다 통역사로 일했기에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가까이서, 여러 번 보았다. 요네하라 마리는 이들의 성격과 일화를 유쾌하게 풀어내는데, 이를 읽고 있노라면 그동안 역사책 속에 활자로 박혀 있던 이름들이 책을 박차고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 고르바초프는 아직 살아있다 - 느낌을 받았다. 이외에도 유명한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가 시골 화장실에서 넘어진 이야기, 그의 제자인 로스트로포비치가 일본 스모 선수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시종일관 러시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 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내가 느꼈던 그 냉랭함 속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모습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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