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 창비청소년시선 44
최설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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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딱 여중생이다.

시집은 잘 읽지 않는다. 문학적 감수성이 바닥을 치는 내게 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길게 늘여 쓰는 이야기를 짧게 줄인 글, 노래 가사처럼 리듬감 넘치는 글, 함축적 의미로 꽉 들어찬 심오한 글... 시에 대한 나의 편견은 이렇다. 아이들과의 수업 활동을 위해 읽는 몇 편의 시를 제외하면 내 손으로 시집을 골라 구매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내가 내 손으로 선택했다. '중학생의 이야기'라는 소개글에 고민없이 선뜻 택했다. 중학생인 큰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이 책을 읽고 나면 중학생 딸에 대한 이해와 교감이 좀 더 용이할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 찼다. 책은 쉽게 읽혔다. 시의 특성상 글이 짧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내가 생각하는 딱 그런 중학생들의 이야기였고, 엄마인 나와 중학생인 딸 사이에서 평소에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했다. 반면에 드러나지 않는 주변 중학생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져 있기도 했고, 상처 받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태연하고 당당한 태도로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가 가슴 아리게 전해지기도 했으며, 나이 답지 않게 속깊은 아이들의 마음이 보여 안타깝기도 했다. 첫사랑 선배, 선생님의 이야기로 가슴 떨리는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여중생의 일상 이야기를 실감나게 시로 표현했다며 공감의 끄덕임을 남발하기도 했다.

혼자만 읽고 덮기엔 너무 아쉬워 기어이 중학생 딸을 불렀다. 인상깊었던 몇 작품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생활이라며 공감하고 신나게 읽어내려가리라 믿었건만 지나칠만큼 무덤덤하고 실상은 이보다 더 하다며 뭘 모른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딸의 모습에 당황했다. 글쓴이가 중학교 교사로 오랜 기간 재직하며 지켜봐 온 아이들의 솔직하면서도 천진한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따뜻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어른이 원하는, 어른들이 보고싶은 아이들의 모습인 건가 싶어 혼란스러워졌다. 편부 가정에 대한 편견에 맞서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핑크 공주, 다문화 가정을 드러내기 싫어 엄마와 거리를 두면서도 한편으로 늘 미안해하고 신경쓰는 츤데레, 첫 사랑 선생님의 스케줄을 꿰고 있는 천진난만 골수팬까지... 다양한 환경에 놓인 다양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쓰여져 있다. 실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쓰여진 시를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그랬었지 하며 흐뭇하게 웃으려나, 아니면 속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한다고 비웃으려나... 딸아이의 무심한 표정을 본 순간 나 역시 우리 아이에게서 내가 보고 싶어하는 모습만을 잘 포장해서 그렇게 믿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복잡해졌다. 어른이라는 교만함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단정짓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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