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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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온라인 서점과 신간 소개 코너에서 계속 눈에 띄던 한 권의 책,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인상깊게 보았던 드라마 제목과 비슷한 제목 때문인가, 눈을 청량하게 하는 초록색 표지 때문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아버지' 세 글자 때문인가...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꼭 읽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너무 궁금했다. 그러던 중 창비에서 서평단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책을 받자마자 정말 단숨에 읽어내렸다.

장례식 3일 동안 펼쳐진 이야기인데 몇십 년의 근대사가 모두 녹아 있는 듯 했고, 가족이나 친지, 친구뿐만 아니라 조문하는 모든 사람들의 저마다의 사연과 아버지에 대한 그들의 마음과, 주인공의 마음이 한 데 얽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분명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와 그걸 전하는 말투는 너무나 유쾌해서 눈물이 글썽하다가도 웃음이 픽 나오고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이상한 경험을 읽는 내내 해야만 했다.

그거사 니 사정이제, 모르쇠로, 나는 어딘지 모를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아버지의 해방일지 p.42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그 누구보다 애썼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아갈 때 평생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살았던 딸의 마음이 되어 함께 미안해하고 이해하고 아파했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이제야 알게 되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아니 그것보다는 인간적인 이해라고 해야할까.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p.138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니 그러면 안 된다, 사람이니 마땅히 도리를 알고 남에게 피해 주면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항상 확신에 찬 내 마음에 이 책은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이니 마땅히 그러해야하지만 사람이기에 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또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 그 명쾌한 진리를 세상 유쾌하게 마음에 새긴다. 더불어 장례식장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이번 방문 땐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져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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